"진정한 의미의 리더십은 정치적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이익에 필수적인 과제를 반드시 관철하는 것입니다."
재임기간(1998~2005년) 두 번의 연금개혁을 성공시킨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이달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터뷰 당시 국민연금 개혁안 발표를 앞둔 윤석열 정부를 향해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연금개혁을 위해선 리더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7일 공개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는 정부의 개혁 의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수급개시연령 등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에 대해 정부가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심에 영향을 줄 모험을 택하지 않은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연금개혁은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 교육개혁과 함께 내세운 3대 구조개혁 과제다.
연금개혁을 이뤄낸 슈뢰더 전 총리는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SPD) 소속이었다. 연금개혁 과정에서 지지층인 노조의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슈뢰더 전 총리는 연금 고갈을 막기 위해 2000년대 초반 19%였던 보험료율을 2030년까지 22%로 높이기로 했다. 70% 수준이었던 소득대체율은 2030년 43%까지 단계적으로 낮추기로 했다.
노동개혁도 단행했다. 실업급여 수급기간을 최대 32개월에서 12개월로 대폭 단축해 노동자들의 경제활동 참여를 유도했다. 기업 사정에 따라 쉬운 해고도 가능하게 했다.
결국 사민당은 2005년 총선에서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에 패배했다. 하지만 메르켈 전 총리는 전임인 슈뢰더 전 총리의 개혁 과제를 이어받아 독일을 유럽의 경제강국 반열에 올렸다. 2000년대 초반 10% 안팎을 기록했던 독일의 실업률은 꾸준히 하락해 작년 기준 5.3%를 찍었다.
독일 내에선 슈뢰더 전 총리의 친러시아 성향 등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연금개혁, 노동개혁 등 그가 재임시절 이뤄낸 성과는 인정한다는 평가도 많다.
슈뢰더 전 총리는 "인기 없는 개혁정책을 추진할 때 재신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리스크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며 "하지만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실천에 옮겼고, 역사적으로 돌이켜 볼 때 그것은 옳은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치인으로서 가장 편한 것은 복지 혜택을 늘리는 것이지만 이것이 리더십이라고 하긴 어렵다"고 강조했다.
하노버=허세민/장서우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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