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자동차 판매 대리점과 용역계약을 맺고 일하는 판매 영업사원도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로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처음 나왔다. 회사에 퇴직금을 요구할 권한이 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회사 측이 근무시간과 장소를 지정하는 등 딜러들을 적극 관리한 정황을 결정적인 판단 근거로 삼았다.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로 계약직 딜러들의 퇴직금 요구가 잇따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경모터스는 SUV 브랜드 ‘지프’(Jeep)를 수입해 판매하는 회사다. A씨는 2017년 9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이 회사 소속 딜러로 일했다. 그는 일을 그만둔 뒤 퇴직금을 받지 못하자 2020년 8월 소송을 냈다. A씨는 “회사가 근무 시간과 장소, 업무방식 등을 지시하고 근태나 복장까지 지적했다”며 “지속적으로 회사의 관리와 통제를 받았기 때문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대경모터스 측은 “A씨는 자동차 판매실적에 따라 받는 보수가 달라지고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가 급여에서 원천 징수된다”면서 “4대 보험도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맞섰다.
1·2심은 잇달아 A씨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용역계약이란 형식보다는 회사와 근로자의 실질적 관계를 더 중요하게 봐야한다고 판단했다. 회사가 A씨를 비롯한 판매 영업사원들을 강하게 통제하면서 지휘한 사실을 근거로 삼았다. 대경모터스 판매 영업사원들은 오전 8시20분에 사업장에 출근해 9시에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가 끝나면 사업장의 지정된 자리에서 업무를 하도록 요구받았다. 당직이 아닌 날에는 오후 6시, 방문 고객들을 상대하며 판매활동을 하는 당직을 맡은 날에는 오후 9시에 퇴근했다.
외근이 있을 때는 활동 내용 등을 사진으로 찍어 지점장이나 대표이사 B씨에게 보고했다. B씨의 경우 영업사원들에게 종종 판매 목표를 달성하라고 전화하고 고객과 통화한 내용과 상담 내용 등을 보내라고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사업장 CCTV로 영업사원들의 업무 상황을 지켜보면서 근태, 복장, 청소 상태 등을 지적하기도 했다.
1·2심 재판부는 “정상적으로 출퇴근을 못하면 당직근무 배정에서 제외되는 등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에 사실상 근무시간이 강제돼 있었다”며 “특히 당직근무의 영업사원들의 실적과 직접 연계되기 때문에 회사가 당직표를 짜고 수정하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감독·통제”라고 판단했다.
판매 성과와 연동된 보수를 받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을 수 없다는 회사 측 주장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영업사원들은 실적에 따른 수당과 별개로 직급에 따라 110만~150만원의 기본급을 받았고 한 달에 차량 세 대를 팔지 못하면 기본급이 50%가 삭감됐다”고 지적했다. 영업사원이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고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을 두고도 “회사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내세워 임의로 정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 같은 사실만으로 A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법원이 보수체계가 완전히 성과에 연동돼있거나 자율적인 업무방식이 보장된 측면이 강한 경우엔 회사 측 손을 들어주는 기조를 오랫동안 유지해왔음을 고려하면, 딜러들의 승소를 장담하긴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5월과 7월 현대차 판매대리점들이 같은 쟁점으로 다툰 소송에서 딜러들을 독립된 개별사업자라는 판단을 잇따라 내놓았다. 대경모터스와 달리 딜러들이 자율적으로 외근과 당직 일정을 짜고 수당이 오직 차량 판매실적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 등이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김진성/곽용희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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