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란도트도 자결? 갸우뚱한 결말

입력 2023-10-29 17:43   수정 2023-10-30 00:24


지난주 서울은 ‘오페라 위크’였다. 국내 양대 오페라 공연장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26~29일 각각 벨리니의 ‘노르마’(연출 알렉스 오예)와 푸치니의 ‘투란도트’(연출 손진책)를 자체 기획·제작으로 무대에 올렸다. 이 공연들은 현대 오페라 연출의 주요 트렌드인 ‘레지테아터’(연출가 중심의 극)가 원작을 얼마나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레지테아터는 오페라 대본(리브레토)과 음악은 그대로 살리면서 시·공간적 배경을 연출가의 해석과 의도에 따라 원작과 달리하는 것을 말한다. 두 공연 모두 현대적인 연출과 접근이 신선했다. 단, 퍼포먼스와 내용이 원작과 동떨어진 대목이 많아 오페라 애호가 사이에서 평가가 엇갈린 무대였다.

현대 오페라 공연의 새로운 트렌드인 ‘레지테아터’는 국내 무대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시오페라단만 해도 지난해 구노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연출 이혜영)을 공연할 때 극의 배경을 1940년대 미국 뉴욕으로 바꿨고,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연출 장서문)는 지금의 서울을 연상시키는 현대적인 무대와 의상 연출로 공연했다.

지난 26일 서울시오페라단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린 푸치니의 미완성 유작 ‘투란도트’는 한발 더 나아갔다. 이번 오페라 연출은 연극계 거장인 손진책(76)이 맡았다. 손 연출가는 마당놀이 등 연희극과 창극을 비롯한 음악극을 연출한 경험은 풍부하지만 투란도트 같은 클래식한 오페라를 무대에 올린 적은 없었다.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과 함께 푸치니의 4대 오페라 중 하나인 투란도트는 국내외 무대에 자주 오르는 인기 오페라다. 중국 베이징 거대한 제국의 공주 투란도트는 자신에게 청혼하러 온 외국 왕자들에게 수수께끼를 낸 뒤 맞히지 못하면 죽여 버린다. 전쟁으로 나라를 잃은 칼라프 왕자는 투란도트에게 반해 청혼하고 공주가 낸 수수께끼 세 개를 다 맞힌다. 그의 용기는 칼라프를 짝사랑하던 시종 류의 죽음을 담보로 한 것이다. 푸치니는 이 작품의 마지막인 3막 1장 ‘류의 죽음’까지 작곡하고 투란도트와 칼라프의 이중창, 왕궁의 피날레 송이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투란도트와 칼라프의 이중창, 피날레 송이 흐르는 마지막 장은 푸치니의 후배 프랑코 알피노가 완성했다.

손 연출가는 이 작품의 리브레토(대본)와 음악을 그대로 살리면서 고대 중국 베이징인 배경을 ‘시대가 불분명한 디스토피아적 지하 세계’로 바꿨다. 막이 열리면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과 구조물, 계단으로 이뤄진 무대 세트가 보인다.

연출가는 시공간적 배경뿐 아니라 결말도 바꿨다. 투란도트가 칼라프와 ‘밀당’의 이중창을 부른 뒤 아버지인 황제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류처럼 권총으로 자결한다. 무대에서 직접적으로 죽음을 보여주진 않는다. 총소리와 핏빛 어린 조명만으로 짐작하게 한다. 이어 투란도트는 원작처럼 황제 앞에서가 아니라 이미 세상을 떠난 류와 함께 손을 잡고 나타나 칼라프의 이름이 ‘사랑’이라고 노래한다. 피날레에서는 투란도트의 압제에서 벗어난 군중이 내내 입고 있던 검은 옷이 아니라 흰옷을 입고 밝은 미래를 기원하는 노래를 부른다.

류의 희생, 죽음이 칼라프와 투란도트의 결합으로 이어진 원작과는 달리 공주의 자살과 민중의 해방을 불러온 것이다. 이 부분은 좀처럼 공감하기 힘들다. 원작의 마무리가 이해가 안 돼 다른 이야기를 상상해봤다는 연출가의 설명을 들어도 마찬가지다. 동시대적 감성으로도 수긍하기 어려운 결말이다.

첫날(26일) 공연은 뉴욕과 영국 런던에서 칼라프 역을 100회 이상 맡은 세계적인 테너 이용훈(50)의 국내 데뷔 무대였다. 그는 1막 아리아 ‘울지마라 류’ 등에서 특유의 서정적인 음색에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힘을 더한 리리코 스핀토 테너로서의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다만 3막 ‘아무도 잠들지 마라(Nessun dorma)’에선 강약 조절이 원활하지 않았다. 이날 타이틀 롤을 맡은 소프라노 이윤정과 류 역의 서선영, 칼라프의 아버지 티무르 역의 바리톤 양희준 등은 좋은 가창과 연기를 보여줬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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