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가 1주기를 맞은 가운데, 이태원 대신 홍대입구나 강남 등으로 인파가 몰릴 것이란 우려와 달리 서울은 대체로 조용한 모습이었다. 대다수 시민은 외출하기보단 집에서 가족들이나 홀로 시간을 보내며 추도의 시간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이 자리를 비운 참사 1주기 핼러윈 거리엔 외국인들이 자리를 채웠다.
집콕한 국민들, 집에서 추모했다
30일 서울 실시간 도시데이터에 따르면 28일 오후 7시~9시 홍대입구의 인구 혼잡도만 '붐빔'으로 나타났을 뿐, 이태원역·강남역·연남동 등 주요 지역의 인구 혼잡도는 가끔 '약간 붐빔'을 나타내고 대체로 '여유'를 가리켰다. 인구 혼잡도는 통신사의 실시간 인구 데이터를 분석·가공해 만든다.홍대입구 쪽은 상대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긴 했으나 29일 6~9시 기준 최근 한 달간 동시간 평균 대비 유동 인구가 약 2%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평일을 앞두고 핼러윈 분위기를 낼 수 있는 마지막 주말이었지만, 사람들이 평소보다 크게 몰리지는 않은 것이다.
강남역이나 신논현역 등은 같은 시간대 약 40%나 빠졌다. 실제 주말 밤 강남역 일대 골목길은 텅 빈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핼러윈 장식품을 판매하는 직원은 "혹시나 핼러윈 기간에 많이들 사실까 하고 상품을 많이 진열해뒀는데 생각보다 잘 안 팔리고 손님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참사가 발생했던 이태원역 일대는 토요일인 오후 9~10시경 일시적으로 '약간 붐빔'을 가리키는 등 사람들이 몰리기도 했으나 이후 내내 한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지난 한 달 평균과 비교하면 10~20% 빠졌다. 29일 오후 9시에 '여유'라고 나타날 정도로 사람들이 없었다.
서울시 교육정보 시스템(TOPIS)에 따르면 교통 체증 정도를 나타내는 서울시의 하루 평균 시속은 28일 24.7km, 29일 26.3km였다. 이는 일주일 전과 같은 수준으로 '원활'한 수준이었다.
지난해 참사에서 대학 동기를 하늘로 떠나보냈다는 직장인 이모씨(25)는 "밖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날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친구에게 너무 미안한 감정이 들 것 같았다"며 "친구는 인근 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고, 그날 퇴근길에 들렸던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1년간 소풍을 떠났을 친구야 하늘에선 고통이 아닌 평안함만 남아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근 3년간 이 시기마다 이태원에 방문해 핼러윈 분위기를 즐겼다는 용산구 시민 김모씨(28)는 "지난해 그 자리(참사 발생 공간)에만 없었을 뿐이지 나도 그들과 크게 생각이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맘때가 되니 작년 생각도 많이 나고,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혼자 좋은 시선으로 보진 못할 것 같아서 근처로 나가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외국인들도 눈물 뚝뚝
이태원역 1번 출구 쪽 참사 현장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는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날에는 대다수가 한국인이었으나, 이날 텅 빈 이태원을 그나마 채운 것은 외국인들이었다. 지난해 이곳에서 온 친구를 하늘나라로 보냈다는 20대 일본인 남성은 추모 공간에서 한참을 기도하다 메모를 남긴 후 자리를 떠났다. 그는 "우리가 기억할게라는 메모를 남겼다"고 전했다.
금발의 백인 여성도 한참 눈물을 흘리다 자리를 떴다. 이 여성은 "참사로 돌아가신 분과 아무런 연관은 없지만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시민들이 남긴 메모지로 도배된 벽면에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도 상당수 보였다.
사건이 발생했던 9시 30분경쯤 자녀를 잃은 유가족이 잠시 현장을 들렸다 추모하고 가기도 했다. 유가족은 한참 무릎을 꿇고 바닥을 만지며 울다 자리를 떴다. 주변에 있던 내외국인들도 함께 눈물을 흘리며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불과 1분 남짓 50m 떨어진 세계 음식 거리에 위치한 음식점과 술집에는 외국인들이 대체로 자리를 지켰다. 한국에서 유학 후 자리를 잡았다는 미국 국적의 한 30대 남성은 "한 달에 1~2번은 이태원에 온다. 핼러윈 분위기도 원래 이태원의 분위기도 나지 않는 이태원이지만 친구들과 충분히 좋은 시간을 보내고 가려 한다. 유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족들과 함께 왔다는 한 40대 남성은 "관광 코스로 추천받고 왔는데 추모 공간을 보고 놀랐다. 가족들과 함께 추모 공간에서 기도하고 음식점으로 왔다. 여기서 먹은 한국 바비큐는 환상적이었다"고 설명했다.
홍대도 체감상 절반은 외국인
29일 인파가 그나마 몰린 홍대도 대체로 외국인이 자리를 지키는 듯했다. 홍대 앞 거리로 가면 갈수록 한국어는 잘 들리지 않고 중국어, 일본어, 영어가 행인들의 입에서 더 많이 나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일일 핼러윈 메이크업에 나선 한 박모씨(23)는 "홍대는 사람이 좀 몰릴 줄 알고 재미도 챙기고 소소하게 용돈도 벌 겸 메이크업을 하려고 나왔는데, 사람들도 생각보다 없고 한국인은 더 없는 것 같아 영업이 잘 안 되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분식 집과 디저트 가게 앞에서 외국인들이 줄을 이었다. 한 화장품 가게에는 중동계 여성 무리가 영어로 종업원과 대화를 나누며 화장품을 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한 분식점 아르바이트생은 "어제는 우리나라 손님들이 많았는데 오늘은 외국인분들이 더 많이 찾는 듯했다. 계속 오늘만 같으면 외국인 손님 대응 매뉴얼을 따로 만들어야 할 판"이라고 설명했다.
한 외국인 관광객 안내자는 "핼러윈 당일까지는 계속 이런 분위기가 유지되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신현보/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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