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영남 스타’ 의원의 서울 출마를 주장하면서 김기현 대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울산에서 4선을 한 김 대표를 향해 혁신위는 물론 당내에서도 “결단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면서다. 험지 출마가 일종의 ‘정치적 카드’인 김 대표로선 총선을 6개월이나 남은 시기에 자의가 아닌 타의로 차출이 거론돼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날 여권에선 인 위원장이 지난 27일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영남 중진 차출론’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특히 국민의힘 텃밭인 영남권의 스타들은 서울에 출마해야 한다”며 대구 5선 주호영 의원과 김 대표를 거론하면서 이슈가 급속도로 확산했다.
국민의힘 소속 수도권 원외 당원협의회 위원장들은 영남 쇄신을 강하게 주장했다. 김용남 경기 수원병 당협위원장은 국회에서 열린 ‘수도권 민심, 국민의힘 원외위원장한테 듣는다’ 토론회에서 “서울을 험지로 인식하는 지금 국민의힘의 '영남당' 한계는 반드시 깨져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희생해야 할 사람들은 솔선수범해서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 ‘영남 의원을 향한 ‘물갈이’나 ‘험지 차출론’은 총선을 앞두고 꾸준히 나왔다. ‘의원 교체가 곧 쇄신’이라는 인식 아래 대대적인 현역 의원 교체가 이뤄졌다. 그중에서도 공천이 당선으로 이어지는 텃밭 영남권은 언제나 물갈이 1순위 지역으로 꼽혔다. TK(대구 경북) 지역은 현역 교체율은 매 선거 때 마다 50%를 웃돌았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지난 7일 부산 3선의 하태경 의원이 서울 출마를 선언하면서 ‘영남권 험지 출마론’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간 당내에선 울산에서 4선을 한 김 대표에 대해서도 험지 출마나 불출마 선언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었다. 일부 의원은 수도권 출마를 결단 내려 달라는 문제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가 총선을 앞두고 스스로 불출마나 수도권 출마 의사를 밝힐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당대표를 맡은 지 7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김 대표의 최대 약점은 인지도”라며 “수도권 출마나 불출마 카드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여권에선 매 총선을 앞두고 당대표를 향한 험지 출마 요구나 선언이 있었다. 지난 21대 총선(2020년)에선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가 선거를 3개월 앞두고 ‘험지 출마’를 선언했다. 서울 종로 출마를 결정했지만, 상대 후보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에게 패배했다. 20대 총선(2016년) 당시에는 부산을 지역구로 둔 김무성 새누리당(국민의힘) 당시 대표를 향한 험지 출마 요구가 제기됐다. 다만 김 전 의원은 "제 지역구의 지역주민들에게 심판을 받겠다”며 험지 출마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김 대표가 ‘결단’을 내리더라도 그 시기가 연말이나 총선 직전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현재 험지 출마 뜻을 밝힐 경우 혁신위나 당내 요구에 못 이겨 결단을 내린 듯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어서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혁신위까지 띄웠는데 지지율 반등을 이뤄내지 못하면, 김 대표를 향해 용퇴론까지 나올 것"이라며 "용퇴론이 나오기 전 스스로 험지 출마를 선언해 정치적 활로를 모색할 수도 있다"고 했다. 김병민 최고위원은 이날 한 라디오에서 "총선까지 아직 긴 시간이 남아 있기에 마지막 순간에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게 될지는 김 대표의 고독한 결단"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영남권 중진들이 수도권에 출마해야 한다는 혁신위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혁신위에서 아직 제안해 온 바가 없다"며 "제안을 정식으로 해오면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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