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지급해야 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조항에서 탈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영업자들의 호소가 있었다”고 전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이 최근 민생 현장에서 수집한 서민들 의견을 조목조목 전달하는 과정에서다. 윤 대통령은 또 “죽도록 일해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 하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는 소상공인의 목소리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지금 당장 눈앞에서 도움을 기다리는 국민의 외침, 현장의 절규에 신속하게 응답하는 것보다 더 우선적인 일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한 것일 뿐 윤 대통령의 발언을 정책과 직접 연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국민들의 거듭된 절규가 있다면 거기에 응하는 게 정부의 임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도 “국민이 좋아하는 정책이라면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사례로 든 ILO 조항은 고용과 직업상 차별을 금지한 ILO 협약 111조다. 윤 대통령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식당에서는 끝없이 올라가는 인건비에 자영업자들이 생사기로에 있다고 절규했다”며 이들이 (ILO 조항 탈퇴) 등 비상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ILO 핵심 협약인 111조 비준 철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이미 체결한 통상 협정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또 국제사회의 비판을 감수하면서 해당 조항을 철회할 실익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관계자는 “참모들이 현장에서 들은 얘기를 생생하게 국무위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라며 “이와 관련해 어떤 정책적 결정을 한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윤 대통령이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는 소상공인 발언을 소개한 것을 두고 은행이 특정 시기에 과도한 이익을 거둘 경우 일부를 환수하기 위한 ‘횡재세’ 도입을 검토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이에 이날 주요 은행주 주가가 크게 하락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달 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대통령실 참모와 장·차관에게 민생 현장을 찾아 목소리를 듣고 살아있는 정책을 만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날 발언은 지난주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들이 36곳의 현장 소통을 다녀온 결과를 바탕으로 나왔다.
윤 대통령은 △김영란법의 음식 가격 및 선물 가격 한도 규제 △5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 따른 부작용 △인파 밀집 지역의 CCTV 등 치안 인프라 부족 문제 △방과 후 어린이 돌봄 부족 문제 등을 해소해달라는 서민들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연금 개혁의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정부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정부가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놓고 ‘알맹이가 없는 개혁안’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연금 개혁 의지를 다시 한번 강하게 밝힌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번 종합운영계획안을 두고 ‘숫자가 없는 맹탕’이라거나 ‘선거를 앞둔 몸 사리기’라는 비판이 있다”며 “그러나 연금 개혁은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나 사회적 합의 없이 결론적인 숫자만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도병욱/오형주 기자 dodo@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