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슈'로 번진 공매도 중단…금융위 '어찌하오리까' [금융당국 포커스]

입력 2023-11-01 07:00   수정 2023-11-01 07:05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 안팎에서 ‘공매도 한시 금지’가 화두로 부상하자 금융감독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편으로는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통용되는 투자 기법인 공매도를 임의로 틀어막았을 때 부작용을 우려하는 반면, 다른쪽으론 여당 등의 압박을 마냥 무시할 수 없어서다.
총선 앞두고 또 나온 '공매도 중단'
31일 금융당국과 여당 관계자 등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최근 금융위원회에 공매도 제도 개선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이는 당초 당국의 우선순위가 아니었으나 국민의힘 정책위원회가 대통령실에 개선안 마련 필요성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정책위 등은 다음달 초순에 금융위와 관련 협의를 할 예정이다.

여당은 공매도 상환 기간 개편, 전산화 시스템 도입, 불법 공매도 제재 강화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맞물려 나온게 공매도 한시 금지 요구다. 3~6개월간 국내 증시에서 공매도 거래를 아예 막고, 이 기간 동안 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실행하자는 주장이다. 작년 6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매도 한시 중단을 주장한 이후 약 1년4개월만에 또 나온 요구다.
당국·증권가는 자본시장 부작용 우려
금융당국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특정 투자 기법을 한동안 금지하는 강력 규제를 임의로 낼 경우 글로벌 자금 유입을 저해할 수 있어서다. 국내 자본시장 역사상 공매도 한시적 전면 금지가 이뤄진 경우는 딱 세 차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발 증시 급락 등이다. 전부 명확한 글로벌 증시 불안이 이유였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한국이 명확한 시장적 근거가 없는 와중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면 글로벌 투자자들에겐 ‘신뢰할 수 없는 시장’으로 보일 수 있다”며 “연말은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다음해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하는 시기라 글로벌 자본이 국내 시장 비중을 축소할 빌미를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2008년 이후로는 2020년 코로나19 당시에조차 공매도를 전면 중단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당정이 앞서 추진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 등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이미 코스피200, 코스닥150 외엔 공매도를 제한하고 있다. MSCI는 선진국지수 편입 요건으로 공매도 전면 재개를 요구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우리의 법과 제도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해외 자본의 국내 투자 유치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도 언급했다.

증권가에선 시장 왜곡 현상을 염려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가 관계자는 “공매도를 특정 기간 전면 금지하면 테마주 등 내실 없는 주식의 가격에 거품이 끼는 동안 유의미한 조정이 벌어지기 어렵다”며 “제때 내려야 할 주가가 내리지 않으면 공매도가 재개됐을 때 오히려 급격한 주가 하락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실제로 이로 인한 주가 하락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투자자들로서도 전혀 달갑지 않은 일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당은 "금융위 입장 명확치않아" 압박
금융위는 아직까지 공매도 한시 중단을 추진하고 있지 않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27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 당시 윤창현·윤한홍·윤주경 국민의힘 의원 등이 공매도 거래 일시 중단을 연달아 거론했을 때도 이같은 입장을 견지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한국 투자자 보호를 최우선 순위로 두고 무엇이 필요한지 검토해보겠다”며 매번 즉답을 피했다.

반면 여당 등은 연일 금융위에 압박을 올리는 모양새다. 31일 윤 대통령과 국회 상임위원장단 간담회에서 백해련 정무위원장은 "개인 투자자들이 공매도 문제 때문에 굉장히 많은 피해를 받고 있는데, 금융위 입장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개인 투자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대통령이) 함께 노력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직 금융당국 관계자는 "공매도 한시 중단은 선거철 '단골 메뉴'지만, 최근엔 정치권의 요구가 전에 없이 거센 분위기"라며 "이제는 사실상 자본시장의 건전·효율성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로 비화한 감이 커져 당국에서도 뚜렷한 입장을 선뜻 내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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