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약 개발 바이오기업 대표는 31일 “20년 전 생긴 코스닥시장 상장 규정(매출 30억원 이상) 때문에 최근 인수한 기업에서 막대한 손실이 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바이오업계에선 현 상장제도가 신약 개발 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2004년부터 코스닥시장에서 매출이 30억원 미만인 기업을 관리종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법인세 비용 차감 전 당기순손실’(법차손), 영업손실, 자본잠식 등 세부 규정을 하나라도 어기면 관리종목행이다.
바이오업계에선 이 제도가 제조업 기반으로 설계돼 신약 개발사와는 맞지 않다며 다른 잣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상근부회장은 “신약을 개발하는 데 1조원 이상 투입되고 임상 1~2상에서 기술 수출을 하더라도 3~5년 안에 매출과 이익이 나올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일부 신약 개발사는 매출 기준을 맞추느라 고육지책으로 관련 없는 회사를 인수했다. 레고켐바이오와 큐리언트는 의약품 유통업체를 인수했고, CG인바이츠(옛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을 사들였다. 제넥신은 화장품 원료와 건강기능식품 회사를, 헬릭스미스는 건기식 회사를 인수했다. 한 바이오기업 대표는 “바이오를 미래산업으로 육성하는 주요 7개국(G7) 중 신약 개발사에 이런 상장 제도를 적용한 곳은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여러 조건 중 한 가지만 어겨도 관리종목이 되지만 미국은 매출, 순이익, 시가총액 등 여러 조건 중 한 가지만 지켜도 상장이 유지된다. 한 바이오 상장사 대표는 “최근 미국 화이자가 매년 수천억원씩 영업적자를 기록해온 신약 개발사 시젠을 56조원에 인수했다”며 “바이오기업을 재무제표로만 평가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상장 규정을 못 맞춘 신약 개발사들이 올해 사업보고서가 나오는 내년 3월 관리종목으로 대거 지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기술특례상장 바이오기업 중 올해 관리종목 지정 유예(매출 5년, 손실 3년)가 끝나거나 지정 위기에 놓인 곳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8~2020년 기술특례상장 기업 68곳 중 67%(46곳)가 바이오기업이다. 이 부회장은 “무더기로 관리종목에 지정되면 자칫 바이오 신약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안대규/이영애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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