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청첩할 지인들을 엄선했다며 300매만 달라고 했다. 인쇄된 청첩장은 드리기 전에 다시 봐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청첩장을 받은 아버지는 문안을 보자 바로 “이걸 나더러 보내라는 거냐”고 역정을 내며 내던졌다. 부아가 나서 내뱉은 ‘남들도 다 그렇게 합니다’라는 말 때문에 아버지 말씀만 길어졌다. 아버지는 세 가지를 지적했다. 맨 먼저 “자식이 청첩인인 걸 아비가 보낼 수 있느냐?”며 격식성을 문제 삼았다. 두 번째는 “청첩장은 속성상 자랑하는 글이다. 그러니 완곡하게 간청하는 문투여야 한다. ‘우리 둘이 결혼식을 하니 오라’는 데 그치고 말았다. 진실성이 없다”라고 꼬집었다. 아버지는 이어 “‘저희를’을 왜 두 번씩이나 썼냐? ‘平素’를 한자로 쓴 이유는 뭐냐?”고 캐묻고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게 ‘글의 여울(灘)’이다. 읽는 이들은 거기서 저항을 느낀다. 글의 맥을 끊고 나아가 사람들을 멀리하게 만드는 교만한 글이다”라며 크게 질책했다.
아버지는 “‘자식 결혼식은 부모의 성적표고 아비의 장례식은 자식의 성적표다’라는 말이 있다. 잘 키워 혼인하게 되는 자식의 혼사는 아비에게 큰 자랑거리다. 그래서 살아오며 여러 연을 맺은 지인들에게 모두 보내려 하는 거다”라고 했다. 한 번 더 “네가 제정신이냐?”며 역정 낸 아버지는 “글은 오래 남는다. 적어도 예식장이 나와 있는 글이라 결혼 날까지는 보관할 텐데 저 글은 보존성을 잃었다”라고 평가했다. 한편 부끄럽고 화가 나 도로 들고나온 청첩장은 일일이 모두 찢어 버렸다. 내 청첩장은 그대로 발송했지만, 아버지는 이튿날 거래하는 인쇄소에서 문안을 새로 써 인쇄한 청첩장을 보냈다.
그날 밤 이슥할 때까지 아버지는 여러 고사성어를 인용해가며 전에 없이 심하게 나무랐다. 아버지는 “뽐내는 글은 읽히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예기(禮記)’ 석례편(釋禮篇)에 나오는 “뽐내는 글은 읽는 사람을 멀어지게 한다[矜則不親]”라는 공자가 한 말을 설명했다. 원문은 ‘군자의 말은 공손하고 예절 바르며, 온화하고 덕이 있으며, 명확하고 문체가 있고, 변론이 옳고 이치가 있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가 갖추어진 다음에야 말할 수 있다. 말이 맞지 않고, 시비를 분별하지 못하면, 그 마음은 반드시 자만하고, 그 행동은 반드시 불편하고, 그 말은 반드시 꾸미게 된다. 자만하면 친하지 못하고, 불편하면 믿을 수 없고, 꾸미면 진실하지 못하다’이다.
아버지는 “교만(驕慢)은 자신의 능력이나 지위가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능력이나 지위를 과시하는 태도지만, 오만(傲慢)은 자신의 능력이나 지위가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해 남을 무시하는 태도다”라고 구분 짓고 내 글은 교만하다고 했다. 이어 “과시욕은 인간의 기본심리다. 그러나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떡잎인 데다 서른여섯에 늦장가를 가는 주제에 세상을 다 얻은 듯이 쓴 글은 가관이다”라고 혹평했다. 특히 “글은 독자를 위한 것이다. 겸손해야 한다. 읽히게 써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하게 말씀했다. 아버지는 “읽히게 쓰자면 쉽게 써야 하고 쉽게 쓰려면 어려운 단어나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을 사용해 읽는 이가 이해하기 쉽게 해야 한다”며 글의 평이성(平易性) 원칙을 지키라고 당부했다.
아버지는 “쉬운 글이라 해서 격이 떨어지는 게 아니다”라며 쉬운 글이라야 이해도와 전달력을 높여 주의력을 끌고,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글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쉽게 써야 한다”며 “이는 비단 글뿐만 아니라 일을 추진할 때도 반드시 갖추어야 할 행동 양식이고 그게 성공 비결이다”라고 했다. 지금도 보관하는 청첩장을 다시 꺼내보며 아버지의 지적을 되새겨본다. 쉬운 글을 쓰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제 글을 배우기 시작하는 손주들에게도 몸에 배도록 오래 연습시켜 물려줘야 할 습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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