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무기 수출은 올해 220억달러(약 30조원) 이상의 2차분 계약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연내 계약 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의 자기자본을 기준으로 한 수출금융 한도가 걸림돌로 작용해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15조원인 수은의 자본금을 30조~35조원으로 늘리는 수은법 개정안을 여야 모두 발의했으나 국회 일정상 연내 통과가 불투명하다.
폴란드 정부는 K-9 자주포(자동 곡사포), K-2 전차(탱크), FA-50 경공격기(소형 전투기), 천무(다연장 로켓) 등을 1, 2차에 나눠 구입하기로 하면서 매번 80% 수준의 금융 지원을 한국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폴란드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면 1차 12조원, 2차 24조원 등 약 36조원의 신용공여가 필요하다.
이렇게 막대한 돈을 빌려주면서까지 무기를 판매해야 하냐는 회의론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그러나 국제 방산 거래 관행을 보면 폴란드의 요구가 무리하다고 할 수도 없다. 현재 무기 거래에서 미국 정도만 제외하고 대부분 선진국은 구매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파이낸싱(금융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프랑스 전투기 라팔은 실전 배치 후 수출이 신통치 않아 ‘저주받은 전투기’라는 오명을 썼다. 그러던 라팔이 프랑스어 뜻대로 ‘돌풍’을 일으킨 것은 적극적인 파이낸싱 정책을 도입한 덕이다. 프랑스 정부는 2021년 이집트에 라팔 30대를 5조3000억원에 판매하면서 대금의 85%를 장기 대출해줬다. 스웨덴은 2015년 브라질에 사브 그리펜 전투기 36대를 수출하면서 브라질 정부 앞으로 직접 대출과 보증보험 형태로 총 50억달러의 파이낸싱을 지원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개발도상국에 무기를 판매하면서 차관급 저금리로 통상 25년 장기 대출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방산은 모든 수요처가 국가로 한정된 특수성을 안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가의 보호·육성이 허용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예외가 인정되는 유일한 분야다. 거래 규모가 워낙 커 국제 계약 시 반대급부를 명문화하는 것도 일반적이다. 기술이전, 군사훈련, 현지 생산 등이 이에 해당하며 이를 완곡어법으로 ‘절충교역’이라고 부른다. 폴란드와의 계약에도 기술이전과 현지 생산 등 절충교역 조건이 있다.
방산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막대하다. 국방력은 그 나라 기술력의 총합이다. 앞으로 방산 기술력은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드론, 로봇, 항공우주 기술 발전에 좌우될 것이다. 고용 창출 효과도 매력적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한국이 방산 4강에 진입할 경우 고용 효과가 2021년 3만5000명에서 6만8000명으로 약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해외 진출 시 원전 등 연계 산업과의 동반 진출 효과도 있다. 폴란드 루마니아 체코 등은 방산 및 원전 패키지 협력을 희망하고 있다. 방산 파이낸싱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방산 수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최근 폴란드 총선에서 한국산 무기 구입에 부정적인 친(親)유럽연합(EU) 성향의 야당연합이 승리했다. 이를 계기로 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인 파이낸싱을 앞세워 한국 수출 물량을 빼앗아 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윤희성 수은 행장이 국정감사에서 방산 지원을 위해 수은의 법정 자본금 한도를 높여야 한다며 “방산은 국가대항전”이라고 한 것은 적확한 표현이다. 방산 수출의 후발 주자인 우리는 선진국에 비해 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물론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도 함께 강구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고 하듯 수출금융 문제로 폴란드 방산 대박이 차질을 빚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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