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블러 시대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를 엮어서 생각하는 ‘앤드 싱킹’을 해야 합니다.”
아난트 아가르왈 에드엑스(edX) 창립자 겸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전기공학 및 컴퓨터과학과 교수는 1일 ‘글로벌인재포럼 2023’에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특별대담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MIT에는 기계공학과 경제학을 동시에 공부하는 등 전공 간 경계를 부수고 서로 결합하는 하이브리드형 교육을 하는 ‘융합학과(blur department)’가 있다”고 소개하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했다.
에드엑스는 미국 하버드대와 MIT가 공동 설립한 무크(Mook·온라인 공개강좌 플랫폼)다. 지역과 환경에 관계없이 누구나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 민주화’를 목표로 세계 250개 대학 및 기업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제공한다. 전 세계에서 약 7800만 명이 에드엑스를 통해 교육의 기회를 얻고 있다. 이 부총리는 2015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구성한 글로벌 교육위원회에서 아가르왈 교수와 만나 자주 의견을 교환했다.
‘디지털 전환과 교육의 미래’를 주제로 대담한 이 부총리와 아가르왈 교수는 교육 전반에서 벌어지는 빅블러에 대처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아가르왈 교수는 “고등학교와 대학의 벽, 대학과 직장의 벽이 사라지고 있다”며 “일반 사원이든, 임원이든 모든 사람이 평생학습을 하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시대”라고 진단했다.
이어 “전기공학 엔지니어도 인공지능(AI)과 같이 일하는 법을 배우고 인문학적 지식이 있어야 한다”며 “기업들은 온라인 교육 등을 통해 직원에게 학습의 기회를 줘야 이들이 스스로 역량을 기르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대학 개혁을 위해 추진하는 글로컬(글로벌+로컬) 대학 사업에 대해 아가르왈 교수의 의견을 물었다. 글로컬 대학은 정부가 지역과 대학의 동반성장을 위해 대학 안팎과 국내외 벽을 허물고 지역·산업과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대학 지원 사업이다. 이 부총리는 “우리나라에서 중앙과 지역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데 핵심 문제는 지역에 젊은이가 없다는 것”이라며 “지역을 살리기 위해 지역 대학들의 글로컬을 추진하고 있는데 아직 지역 대학과 글로벌 파트너의 협력은 아쉬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아가르왈 교수는 “글로컬이라는 아이디어가 정말 좋다”며 “이를 위해서는 지역(로컬) 대학과 글로벌 대학 간 벽이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에드엑스의 대학 연계 프로그램 ‘에드엑스 포 캠퍼스’를 예로 들었다. 그는 “에드엑스와 업무협약(MOU)을 맺은 인도 안드라프라데시주 대학생들은 수업의 절반을 각 대학에서 듣고 절반은 온라인으로 하버드대와 MIT, 구글의 수업을 들은 뒤 학위를 받는다”고 소개했다. 이어 “이렇게 연계하기 위해서는 정책을 바꾸고 재원을 조달해야 한다”며 “(이 부총리가) 교육부 장관으로서 결심만 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두 대담자는 대학 내에서도 학과 간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아가르왈 교수는 “MIT에 처음 입학하면 특정 과에 소속되지 않는다”며 “학생들은 1년 동안 MIT의 여러 수업을 들어보고 2학년 때부터 전공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대학들이 블러 학부를 통해 전공 간 벽을 허무는 현상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했다.
이 부총리는 “최근 교육부에서도 (대학의) 벽을 허물고 있는데 전공 간의 벽이 문제”라며 “많은 대학의 총장이 공감하고 있고, 한국에도 KAIST처럼 전공의 벽을 허문 대학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부총리는 “교사는 아이들의 사회적 스승과 멘토가 돼주고, 단순 지식 전달은 AI 교과서가 인간 보조교사보다 더 잘 지원해줄 수 있을 것”이라며 “2025년부터 한국에서도 영어·수학·코딩 세 과목에 AI 교과서를 도입한다”고 소개했다.
글로컬 사업에서 장애물이 되는 언어 장벽도 AI가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아가르왈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에드엑스에서 생성형 AI를 도입한 뒤 번역 비용이 기존의 100분의 1로 줄었다”며 “이제는 한국어처럼 어려운 언어는 물론 인도 탈라구어 등 일부 지방에서만 쓰는 지역어로도 번역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AI를 도입한 교육의 부작용과 도전 과제도 이날 함께 논의됐다. 아가르왈 교수는 “부유한 국가와 가정의 학생들은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를 통해 AI 기술을 배울 수 있지만 기술 접근성이 낮은 학생들은 디지털 격차를 느끼며 뒤처진다”고 우려했다. 이어 “정부가 모든 학생의 디지털 접근성을 확실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부총리가 챗GPT 등 생성 AI의 부작용에 우려를 나타내자 아가르왈 교수는 “AI는 신중하게 책임감을 가지고 사용해야 한다”고 동의했다. 에드엑스는 AI 활용 시 지켜야 하는 일곱 개 원칙을 세워 공개하고 있다. 교사와 학습자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만 AI를 활용하고 학습자 정보를 신중히 다뤄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 부총리는 “한국이 빠른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데는 교육의 힘이 있었다”며 “지금 학교폭력과 교권 문제, 지역대학 위기 등 많은 아픔이 있지만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된다고 생각하고 교육의 대전환을 이뤄가고 있다”고 말했다.
노유정/김세민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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