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8강 경기에서 ‘역대급 이변’이 지난 3일 발생했다. 국내 롤 리그 LCK(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1번 시드 젠지 e스포츠가 중국리그 LPL 2번 시드 빌리 빌리 게이밍(BLG)에게 5세트 접전 끝에 패한 것이다. LCK에는 악몽이지만 KT 롤스터에게는 역설적으로 ‘희망’이 보인다. LCK 3번 시드 KT는 오늘 LPL 1번 시드 징동 게이밍(JDG)과 4강 진출을 놓고 맞대결을 벌인다.
BLG의 ‘업셋’ 승리가 KT에게 희망인 이유는 두 팀이 서머 시즌부터 롤드컵 8강에 이르는 과정이 ‘평행이론’처럼 유사하기 때문이다. 먼저 두 팀은 모두 각각 LCK와 LPL 서머 정규리그를 1위로 마무리 지었다. KT는 17승 1패, BLG는 15승 1패로 단 1패씩만을 허용하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 들어서면서 흔들렸다. 두 팀 모두 최종 결승 진출전에서 패하며 결승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이후 진행된 롤드컵 스위스 스테이지에서도 KT와 BLG는 모두 3승 2패로 8강행 막차를 탔다. 녹아웃 스테이지 상대로 각각 LCK 1번 시드와 LPL 1번 시드를 만난 것도 똑같다.
‘평행이론’이라는 거창한 이야기를 꺼냈지만 결국 핵심은 두 팀 모두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저력이 있는 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KT 역시 고점이 나온다면 충분히 승리가 가능하다. 특히 젠지가 패배한 이유로 꼽히는 ‘너무 긴 휴식’이 JDG에도 똑같이 해당한다는 점도 KT에게 유리한 점이다. JDG는 젠지와 마찬가지로 3승 0패로 8강을 확정 지은 이후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실전’을 치르지 못한 상황이다. 반면 KT는 직전 경기가 지난 10월 29일로 경기 감각이 살아있다.
핵심은 결국 밴픽이다. 젠지의 패배 요인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스위스 스테이지 후반부에 바뀐 메타에 적응하지 못한 점을 꼽았다. 실제로 젠지는 BLG에게 스위스 스테이지 후반에 핵심픽으로 부상한 레나타 글라스크를 풀어주면서 1, 2 세트를 연달아 내줬다. JDG 역시 메타픽을 점검은 했겠지만 실전에서 사용해 본 적이 없기에 다소 불안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JDG는 만만치 않은 상대다. 한국 국가대표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한 정글러 ‘카나비’ 서진혁과 원거리 딜러 ‘룰러’ 박재혁이 포진해 있다. 탑 라이너 ‘369’ 바이자하오, 미드 라이너 ‘나이트’ 줘딩. 서포터 ‘미싱’ 러우윈펑도 중국리그 내 최상급 선수로 꼽힌다. 실제로 JDG는 올해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했다. 2023 LPL 스프링과 서머, 2023 MSI(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을 석권했다. 롤드컵 우승컵만 차지하면 누구도 달성하지 못했던 ‘캘린더 그랜드슬램’이라는 대업을 이루게 된다.
KT가 JDG의 ‘빈틈의 실’을 찾아 어제에 이어 대역전 드라마를 성공시킬지 아니면 JDG가 대업을 이루기 위한 첫 관문을 깔끔히 통과할지에 팬들의 관심이 쏠린다. 만약 KT가 패한다면 LCK는 최악의 상황에 놓인다. T1이 내일(5일) LPL의 리닝 게이밍(LNG)를 상대로 승리하더라도 4강에서 JDG를 만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지난 2018년 한국에서 열린 롤드컵에서 4강에 한국 팀이 단 한 팀도 오르지 못하고 외국 팀 간의 결승이 성사됐던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주현 기자 2Ju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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