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대답하면서, 왠지 모를 답답함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팬데믹 이후 학교와 회사의 시스템에서 벗어난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숙제 아닌 숙제가 주어졌다. 특히 MZ세대들은 자기만의 루틴을 찾아 소위 ‘갓생살기’ 흐름을 만들었다. 앱을 통해 자신의 하루를 트래킹하고 기록하며 자신의 삶을 최적화하려는 추세가 자리 잡았다. 나 또한 이런 흐름에 따라 매일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 속에서 지양하고 싶은 말은 ‘생산성’이라는 단어다. 생산성은 생산 과정에서 생산 요소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결합했는가의 정도를 말하는데, 투입된 자원에 비해 산출된 생산량이 어느 정도인가를 대변하는 척도다. 마치 인간을 기계적 요소로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요즘 인기 있는 자기계발 콘텐츠를 보면 ‘생산성 향상을 위한 방법’, ‘효율적인 시간 관리’ 같은 제목투성이다. 이런 말들을 삶에 대입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강박적으로 변해버리고 만다(우리는 AI가 아닌데!). 항상 모든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잘 사는 삶일까? 그게 성공한 삶일까? 어쩌면 우리가 고민해서 하는 질문조차 필요한 것만 잽싸게 물어보는 ‘검색’의 행위에 가깝지 않을까?
나는 분위기를 풀어주는 실없는 농담을 하거나 멍때리며 모빌을 구경하는 시간, 다이어리에 작고 귀여운 스티커를 붙이는 순간처럼 무용한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나에게 효용성을 준다고 느껴지는 자기계발서들을 주로 읽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 건 시집의 시 한 구절, 소설 한 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사람들을 만나면 쓸모없어 보이는, 무용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내가 영화 속 캐릭터가 된다면?” 같은.
“이제 뭔가를 시작하려는 우리는 ‘그건 해서 뭐 하려고 하느냐’는 실용주의자의 질문에 담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하는 거야’, ‘미안해. 나만 재밌어서’라고 하면 됩니다. 무용한 것이야말로 즐거움의 원천이니까요.”(김영하 <말하다>)
모든 일을 효율적으로 추구하며 생산성과 효용성만 따진다면 즐거움은 퇴색되기 마련이다. 즐겁지 못하면 오래 하기 힘든 법. 오늘도 나에게 무용한 질문들을 던지며 비효율적이고 무용한 것들의 힘을 믿어본다. 즐겁게, 나만의 속도로 가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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