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열리는 골프대회의 가장 큰 변수는 날씨다. 햇빛이 쨍쨍 내리쬘 때야 괜찮지만 흐린 날엔 종잡을 수 없다. “제주에서 우승은 하늘이 내린다”는 말이 생긴 이유다.
5일 제주 엘리시안제주CC에서 막을 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에쓰오일챔피언십(총상금 9억원)의 주인공도 하늘이 정했다. 이날 열린 최종 4라운드가 폭우로 중단되면서 3라운드까지 성적으로 우승자를 가렸기 때문이다. 4라운드 중단 직전까지 선두를 달리던 김재희(22)는 눈물을 머금었고, 전반에만 5타를 잃어 사실상 우승권에서 멀어졌던 성유진(23)은 ‘뜻밖의 우승’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최종 라운드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날씨는 나쁘지 않았다. 갑자기 폭우가 몰아치면서 오전 11시45분 1차로 중단됐다. 33분 만인 낮 12시18분 재개된 뒤 해가 뜰 정도로 맑아졌지만 오후 2시10분부터 비바람이 다시 찾아왔다. 그린에 물이 고여 경기가 불가능해져 다시 한번 경기가 중단됐다. 조직위원회는 기상 악화로 경기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고 4라운드를 취소하기로 했다.
이번 대회는 54홀 스트로크 경기로 조정됐고 3라운드 성적으로 종료됐다. 3라운드까지 선두이던 성유진이 우승자로 결정됐다. 지난 5월 두산매치플레이챔피언십 이후 시즌 두 번째이자 개인 통산 세 번째 우승이다.
성유진으로선 이런 행운이 또 없다. 이날 1타 차 단독 선두로 4라운드에 나선 그는 1번홀(파5)에서 보기를 적어낸 뒤 4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을 물에 빠뜨리는 등 전반에만 5타를 잃었기 때문이다.
김재희는 눈앞에 왔던 우승을 놓친 통한의 하루가 됐다. 그는 공동 2위로 최종 라운드에 나서 전반에만 버디 4개, 보기 1개로 3타를 줄이며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경기가 취소되면서 생애 첫 승 도전이 허무하게 불발됐다. 3라운드 성적에 따라 김재희는 이예원(20)과 함께 공동 2위를 최종 성적표로 받았다.
중하위권에서도 희비가 교차됐다. 이 대회는 풀시드로 출전하는 올 시즌 마지막 경기다. 이번 대회 결과를 반영해 올해 상금랭킹 70위 안에 들어야 다음주 열리는 시즌 최종전인 SK쉴더스·SK텔레콤챔피언십에 출전할 수 있다. 나머지 선수들은 내년 시드권을 따기 위해 전북 무안CC에서 열리는 시드순위전에 나서야 한다.
정소이(21)는 웃었다. 올 시즌 33개 대회에 출전해 절반인 17개 대회에서 커트 통과한 그의 내년 시드권 확보 여부는 사실상 이번 대회에 달렸었다. 결과는 공동 7위. 상금랭킹을 47위로 끌어올리며 내년 시드권을 확보했다. 홍진영(23)도 이번 대회에서 55위에 오르며 상금랭킹 70위로 올라섰다. 그 덕분에 다음 대회 출전권 막차를 탔다. 상금랭킹을 끌어올릴 기회를 한번 더 잡은 셈이다.
이지현(25)은 고개를 숙였다. 이번 대회 3라운드에서만 5타를 줄이며 공동 15위로 순위를 끌어올렸고, 목표로 삼은 ‘시드권 확보’도 턱밑(상금랭킹 71위)까지 갔지만, 거기까지였다. 최종 라운드가 취소되면서 71위로 확정됐기 때문이다. 70위 홍진영과의 총상금 차이는 376만원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하위권에 머무른 하민송(27) 박채윤(29)도 올 시즌 정규투어 출전을 이번 대회로 접게 됐다.
이예원은 이번 대회 결과에 따라 올 시즌 대상과 상금왕을 일찌감치 확정지었다. 이예원은 대상 포인트 42점을 더한 651점을 쌓아 남은 한 대회 성적과 관계없이 임진희(25·대상 포인트 558점)를 따돌리고 대상 수상자로 확정됐다. 대상 포인트 2위 임진희는 공동 11위(8언더파 208타)로 대회를 끝내 역전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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