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버스 시간표다. 주말은 하루에 8편만 운행하는 이 시간표는 인적 드문 시골의 것이 아니다. 도쿄 한복판인 도쿄역과 주오구 하루미를 오가는 버스 시간표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 노선은 주말에도 시간당 2~3편을 운행했다. 버스편이 갑자기 줄어든 것은 2023년 9월14일부터다. 이용객이 줄어서가 아니다. 운전기사가 부족해서다.
이 노선을 운영하는 버스 회사 만의 특수한 사정도 아니다. 일본 전역에서 운전기사가 없어 버스 노선을 폐지하거나 운행편수를 줄이는 사례가 급속히 늘고 있다.
오사카부 돈다바야시에서 86년째 버스 노선을 운영하는 곤고자동차는 오는 12월20일자로 버스 사업을 폐업한다고 발표했다. 히로시마 중심부에서 노면전차와 버스를 운행하는 7개 대중교통 회사는 지난 4월 운행시간표를 조정해 운행편수를 6% 줄였다.
마찬가지로 도쿄 도심인 미나토구 게이오대 정문 근처의 라멘집은 한 달 전부터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종업원을 구하지 못해서"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미나토구 주변에 5개의 점포를 운영하는 이 라멘집은 심야 영업을 한다. 낮에는 학생들의 배를 채우고 밤에는 한 잔 걸치고 귀가하던 직장인들의 속을 다스리는 라멘집으로 꾸준한 인기를 누렸지만 인력난에는 두 손을 들 수 밖에 없었다.
휴업까진 아니지만 종업원 부족으로 영업시간을 단축하는 음식점을 최근에는 도쿄도 번화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2030년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총력전을 벌이는 한국과 대조적으로 일본은 이미 따놓은 엑스포를 제대로 치르지 못할까 비상이 걸렸다. 2025년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개회까지 1년 7개월 밖에 남지 않았는데 행사장을 제 때 짓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일본 건설사들이 인력난과 낮은 채산성을 이유로 행사장 건설 사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을 매번 외면하고 있어서다.
일본에서 인구 감소의 역습이 시작됐다. 앞선 사례에서 확인한 것처럼 일본 경제는 올들어 부쩍 인력부족의 제약을 심각하게 받고 있다. 인력난을 복싱에 비유하자면 저출산과 고령화의 원투 스트레이트다. 고령자들이 대거 은퇴하면서 일할 사람은 줄어드는데 저출산의 여파로 새로 일할 사람은 충원되지 않는다.
일본버스협회는 2030년 일본 전역의 버스 운전기사가 9만3000명에 그쳐 3만6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22년 버스 운전기사의 평균 연령은 53세다. 상당수 버스 기사가 10년 이내에 정년을 맞는다는 뜻이다.
반면 버스 기사가 되겠다는 사람은 적다. 은퇴할 고령 운전기사의 빈 자리를 채워야 할 젊은 세대들은 운전대 잡기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2022년 버스 운전기사의 연간 소득은 399만엔(약 3615만원)으로 전체 산업평균보다 98만엔(약 888만원) 낮았다.
건설시장에도 인구감소의 역습이 몰아쳤다. 총무성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건설업 종사자는 1997년 685만명에서 2022년 479만명으로 30% 이상 감소했다.
이 가운데 55세 이상이 36%에 달한다. 일본건설업연합회에 따르면 2022년 건설업계의 연간 노동시간은 1986시간으로 전체 산업 평균보다 268시간 길었다. 건설업계 역시 현역 근로자들 상당수가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새로 충원되는 노동력은 부족한 것이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 공사 기간이 길어지고 공사 비용은 늘어나는 부작용은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국토교통성이 발주해 다이세이건설 등이 시공하는 아이치현의 댐 건설공사는 지난해 5월 시공계획을 변경했다. 공법 변경 등의 영향까지 반영한 결과 공사기간이 8년 길어지고, 공사비는 2400억엔에서 3200억엔으로 800억엔 늘었다. 인구감소의 역습이 시작됐다②로 이어집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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