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위헌심판 기각… 결정문 들여다보니

입력 2023-11-07 15:06  



법원은 지난 3일 A사 대표가 신청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기각했다. A사의 대표는 지난해 2월 독성물질이 함유된 세척제를 사용하면서도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하지 않아 근로자 16명에게 급성중독 피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이 결정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위헌 여부에 대해 법원이 최초로 내린 결정이다.

A사 측은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제1항 제1호의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및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는 그 개념이 불명확하여 예측가능성이 없으므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법원은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 그 적용대상자와 구체적으로 금지되고 있는 행위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산업재해가 기업 내의 부실한 안전관리체계, 위험관리시스템 부재 등 제도적·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인식 하에,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였고 이를 개선·시정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에게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이러한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하여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형사책임을 묻기 위한 목적에서 제정된 것이고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제2항은 같은 조 제1항의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고, 이에 따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는 제1호부터 제9호까지 위 조치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하고 있으며 △유해·위험 요인을 통제하는 수단이나 방법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은 입법기술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고, 오히려 이를 일률적·획일적으로 정하는 것은 각 개별 기업들의 특수성 등을 반영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고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종사자의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고, 안전 및 보건 관련 전문가나 법률전문가 등으로부터 조언을 받을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제1항 제1호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위헌성에 대하여 내린 결론에 공감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다만 ①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가 규정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의 내용들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가 제1호부터 제9호를 통해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들어 중대재해처벌법이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시행령 제4조 중 제3호는 ‘유해·위험 요인의 확인 및 개선이 이루어지는지를 반기 1회 이상 점검한 후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필요한’ 조치를 하였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의 내용이 확정되어야 하지만 이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이나 내용은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시행령 제4조 제4호 가목에서는 ‘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 시설 및 장비의 구비 등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고 그 편성된 용도에 맞게 집행하도록 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필요한 인력 등’이나 ‘필요한 예산’의 범위에 대한 판단 기준이나 내용은 규정되어 있지 않다.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게끔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할 것’을 명확성의 원칙으로 이해했을 때, 법률의 규정뿐만 아니라 시행령의 내용까지 포함하여 해석해 보아도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이 이행하거나 구비해야 할 ‘필요한 조치’나 ‘필요한 예산’ 등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견하기 어렵다면 과연 명확성의 원칙이 지켜진 것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②그리고 필자가 개인적으로 이번 결정에서 이해한 법원의 논거 중 하나는 ‘중대재해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이 잘못해서 발생하는 것이고, 이를 예방 및 처벌하려고 제정된 것이 중대재해처벌법인데, 해당 사업장의 유해·위험 요인은 해당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이 제일 잘 알 것이고, 불명확한 부분이 있으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면 되니, 현재 규정 정도의 불명확성은 감수하여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형사처벌규정의 수범자가 해당 규정의 내용이 추상적이고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건에서 ‘수범자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수범자 당신이 잘 알 수 있지 않느냐’는 논리로 판단을 한 것 같아 아쉽고, 무엇보다 다른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면 불명확한 부분을 해소할 수 있으니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러한 논리라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여력이 없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의 경우에 동일하게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 30일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는데, 당시 중대재해처벌법의 불확실성 해소와 관련하여 ‘기업이 실제 안전역량 향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험성평가’와 ‘재발방지대책 수립·이행’ 등 핵심 사항 중심으로 명확화하는 것이 입법 취지에 더 부합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방안은 ‘산업안전보건법령 개선 TF’ 를 통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하였는데, 올해 3월 10일 노사단체의 추천 등을 통해 학계, 법조계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산업안전보건 법령정비추진반’을 출범했다고 발표하였다. 현재 중대재해처벌법 규정의 내용 명확화와 관련하여 논의 중인 것으로 보이는데, 조속한 규정의 정비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박진홍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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