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외 유망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 투자에 나선 SK하이닉스는 첫 타자로 일본 반도체 강소기업을 꼽았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해 SK스퀘어·신한금융그룹·LIG넥스원 등이 1000억원가량 공동 출자해 설립한 투자법인 TGC 스퀘어는 “기술력을 갖춘 해외 소부장 기업에 선제 투자해 안정적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 기술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등 핵심 소부장 영역에서 하이엔드 기술에 특화해 높은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 세계 1~2위 일본 업체들이 상당수로 파악된다. 정책적으로 대일(對日) 소부장 의존도를 줄여왔는데, 그 숨은 비결 중 하나가 일본 소부장 업체 노하우를 국내 기업들에 이식했다는 ‘역설’이 포인트다.
이 같은 성과는 소부장 강자인 일본 기업들 역량과 노하우를 국내 기업들이 흡수한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하루아침에 자립할 수 있겠느냐”면서 “일본에 소부장 강자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결국 기술력을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귀띔했다.
일본에는 신에츠화학공업(실리콘웨이퍼), 스미토모화학(포토레지스트) 같은 반도체 소재 분야 글로벌 시장 점유율 수위를 다투는 기업이 여럿 있다. 도쿄 일렉트론, 스크린(SCREEN) 등 반도체 장비 기업들도 글로벌 10위 안에 드는 점유율을 확보했다. 자동차나 에너지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덴소와 아이신 역시 글로벌 점유율 최상위권 업체다.
이에 착안해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한일재단)은 2008년부터 소부장 기술 중심 ‘일본 우수 퇴직기술자 유치 활용 사업’으로 국내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해왔다. 일본의 핵심 시니어 인력을 발굴·확보해 국내 기업을 매칭, 맞춤형 컨설팅을 해주는 내용. 한일 관계가 부침을 거듭하는 동안에도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의 예산 지원을 받아 16년간 꾸준히 사업을 이어와 900명 넘는 일본 우수 퇴직기술자 데이터베이스(DB)를 보유했다.
모두 일본 퇴직기술자의 조언을 통해 국내 중소·중견기업 경쟁력을 끌어올린 사례다. 문재인 정부 당시 일본의 수출 규제를 계기로 높은 대일 의존도가 부각됐지만, 그 이전부터 현지 네트워크를 구축해 일본 소부장 기업들이 보유한 기술력을 ‘내재화’해온 셈이다.
정부도 향후 일본 소부장 기업들과의 투자·협력, 양국 소부장 기업간 협력모델을 통한 제3국 공동진출 등 ‘상호보완적 공급망 협력’ 기조로 가닥을 잡았다.
실제로 이 기간 사업을 통해 △기술지도 876건 △기술인재 747명 양성 △기술개발 특허 66건 출원 및 57건 취득 △기업 매출 9201억원 증대 △수출 6709억원 증가 △507억원 규모 비용절감 효과 등의 실적을 올렸다. 한일재단 측은 “국내 기업의 기술력 향상과 소재·부품 분야 글로벌 격차 축소에 도움을 준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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