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0.7%, 4.3%, 2.6%, 그리고 1.4%. 2019년부터 올해까지 5년간 한국 경제성장률(2023년은 전망치)이다. 코로나 기저효과가 있었던 2021년을 제외하면 3%를 넘긴 해가 없다. 연평균 2%에 못 미치는 감질나는 성장이다. 그런 가운데 저출산·고령화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피크 코리아’(peak Korea), 즉 한국의 국력이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암울한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세계를 놀라게 한 ‘한강의 기적’은 이렇게 막을 내리는 것일까.
피크 코리아의 가장 뚜렷한 징후는 추세적인 경제성장률 하락이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외환위기를 겪은 1990년대에도 연평균 7%가 넘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4%대, 2010년대 3%대로 떨어졌다. 최근엔 2% 성장도 쉽지 않다.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지는 것도 시간 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성장률이 내려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경제 규모가 훨씬 큰 나라와 비교해 봐도 한국의 성장률 하락세는 심상치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한 미국과 일본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각각 2.1%와 2.0%로 한국(1.4%)보다 높다.
심지어 내년 잠재성장률은 1.7%로 미국(1.9%)보다도 낮아질 것으로 추정됐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를 최대한 활용해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말한다.
이런 추세라면 선진국 따라잡기도 어려워진다. 작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5990달러였다. 주요 7개국(G7) 중 이탈리아(3만7700달러)와는 큰 차이가 없지만 4만달러대인 영국·프랑스·일본, 5만달러대인 독일·캐나다, 7만달러대인 미국과는 격차가 크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 가장 빠른 고령화는 선진국 따라잡기를 더 어렵게 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작년 12월 발표한 ‘2075년으로 가는 길’ 보고서에서 2075년 세계 15대 경제대국을 예측했다.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이집트, 필리핀은 포함돼 있는데 한국은 없다.
세계 경제의 우등생이자 모범생이던 한국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경제 성장은 노동, 자본, 생산성의 함수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일을 더 하거나 자본을 더 투입해야 한다. 노동과 자본 투입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있는데, 그것을 총요소생산성이라고 한다. 같은 사람이 같은 기계로 같은 시간 일하는데 숙련도가 높아져 더 많은 생산물을 내놓는다면 총요소생산성이 향상된 것이다.
한국은 이 세 가지 모두 빨간불이다. 우선 저출산·고령화로 노동 투입에 한계가 왔다. 한국은행은 잠재성장률에 대한 노동 투입의 기여도가 2011~2015년 0.7%포인트에서 2016~2020년 0.2%포인트로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2021~2022년엔 -0.2%포인트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인구가 감소하면 투자 증가도 기대하기 어렵다. 자본 투입의 잠재성장률 기여도 역시 2011~2015년 1.6%포인트에서 2021~2022년 1.4%포인트로 축소된 것으로 한은은 추정했다.
노동과 자본 투입의 부진을 상쇄할 수 있는 것은 생산성이다. 하지만 한국의 생산성은 아직 선진국과 격차가 크다. 지난해 한국의 근로시간당 국내총생산(GDP)은 43.1달러로 미국(74달러), 독일(68.5달러), 영국(60.5달러)에 한참 못 미쳤다.
한국의 경제적 위상과 산업 경쟁력에 비춰볼 때 피크 코리아 논란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부터 원자력, 바이오, 건설, 방위산업에 이르기까지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은 다양한 산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생산성 수준은 선진국에 못 미치지만, 생산성 향상 속도는 높은 편이다.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두권이다. 한때 저성장에 빠졌던 선진국들이 구조 개혁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한 사례도 많다. 미래는 어느 쪽으로든 열려 있다.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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