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파산 신청이 사상 최대 규모에 달하는 등 실물경제 현장에 ‘비상등’이 켜졌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체력이 바닥난 가운데 원자재값과 자금조달 비용까지 치솟자 견디지 못하고 파산을 신청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파산 신청이 회생(회생단독과 회생합의 사건의 합계)을 연간 기준으로 앞지르는 ‘데드크로스’가 올해 처음 현실로 다가왔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울산의 부품 제조업체 A사는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을 견디다 못해 올초 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다. 지난해 원청인 대기업에 납품가격을 인상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파산을 택했다. 파산 신청 소식에 원청은 뒤늦게 단가를 올려주겠다고 했지만 경영진의 회생 의지는 이미 꺾인 뒤였다. 업계 관계자는 “어려운 영업환경과 치솟은 대출 금리를 감안할 때 인상된 단가 수준으로도 회사를 살리기 어렵다고 판단해 끝내 폐업을 결정한 걸로 안다”고 전했다.
건설업계에서도 문을 닫는 회사가 급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까지 폐업한 종합건설사는 294곳으로 전년 동기 대비 94.7% 증가했다. 하도급을 주로 담당하는 전문건설업체의 폐업(1427건)도 같은 기간 21% 늘었다. 올해 들어 대우조선해양건설에 이어 에이치엔아이엔씨, 대창기업, 신일 등 국토부 시공능력평가 100위 안팎의 기업들이 줄줄이 회생절차에 들어갔고 9월에는 아파트 브랜드 ‘이안’을 보유한 대우산업개발이 회생절차를 시작했다.
코로나 시대에 각광받던 플랫폼 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 빗썸라이브는 지난달 파산 선고를 받았다. 가상자산거래소 빗썸과 미디어 기업 버킷스튜디오가 2021년 각각 60억원을 출자해 메타버스·대체불가능토큰(NFT) 등을 도입한 커머스 플랫폼을 설립했지만 쌓이는 적자에 파산했다.
2018년 설립된 택시배송 플랫폼 스타트업 딜리버리티도 마찬가지다. 이 업체는 신규 투자를 받지 못해 자금난에 허덕이다 결국 지난주 법원에서 파산을 선고받았다.
기업들의 ‘줄도산’ 우려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어음부도액이 증가하는 등 자금사정이 어려워진 기업이 계속 늘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9월 어음부도액은 4조1568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같은 기간 1조3203억원에서 3.1배로 늘었다.
실제 경영 과정에서 느끼는 자금 압박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중소기업 자금사정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6월 79에서 지난달 74로 낮아졌다. 중소기업 전문 로펌인 최앤리 법률사무소의 최철민 대표변호사는 “하반기 들어 파산 신청 문의가 늘었다”며 “자금줄이 막힌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서 파산하는 업체가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진/김진성/강진규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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