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식당과 카페에서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 고금리 고물가 상황에서 일회용품 규제가 자영업자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선 총선을 앞두고 나온 선심성 정책이란 지적도 나온다.
일회용품 사용 금지 철회
환경부는 7일 식당 카페 등 식품접객업과 집단 급식소의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를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 조치는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하기로 했다. 편의점의 비닐봉지 사용 단속은 중단하기로 했다. 생분해성 봉투 등 대체품 사용이 정착됐다는 판단에서다.이들 조치는 지난해 11월 24일부터 일회용품 규제 차원에서 시행했다. 1년간의 계도기간이 끝나는 오는 24일부터 위반 시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었는데 환경부가 사실상 규제를 백지화한 것이다. 자영업자의 불만을 감안한 조치다.
식당과 카페 점주들은 “일회용 종이컵 대신 다회용컵을 쓸 경우 컵 씻을 직원을 따로 고용해야 하고 세척 시설도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가중된다”고 불만을 표시해왔다. 다회용컵을 비위생적이라고 기피하는 소비자들이 매장에서 종이컵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자영업자들의 지적이다. 플라스틱 빨대는 대체품인 종이 빨대의 독특한 냄새 탓에 음료 맛이 떨어진다는 소비자 불만이 많았다.
임상준 환경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1년간의 계도기간에도 충분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원가 상승과 고물가, 고금리 등 어려운 경제 상황에 고통을 겪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규제로 또 하나의 짐을 지우는 것은 정부의 도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일회용 종이컵 규제와 관련해 “세계에서 규제하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고 했다.
환경부는 대신 일회용품 줄이기에 동참하는 매장에 식기세척기 구매비를 지원하는 등 혜택을 주기로 했다. 규제 대신 권고나 지원을 통해 일회용 종이컵 사용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시행 1년 만에 ‘없던 일로’
일회용품 규제 방침이 정해진 건 지난 정부 때인 2019년 11월이었다. 2021년 말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이 공포되면서 시행이 예고됐다. 현 정부는 이 정책이 자영업자와 소비자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임 차관은 일회용품 규제에 대해 “조급하게 도입된 정책”이라고 했다.생분해 비닐봉지(잘 썩는 비닐봉지)에 대해서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은 2025년부터 생분해 플라스틱도 비닐봉지의 일종으로 보고 금지할 예정이다. 다른 나라가 생분해 플라스틱을 육성하는 흐름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오자 환경부가 생분해 플라스틱 허용 기간을 늘리는 쪽으로 재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본지 7월 31일자 A1, 4면 참조
일각에선 환경부가 일회용품 규제를 사실상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식당 카페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 등의 방침이 정해진 지 4년이 흘렀는데 갑자기 이를 백지화하는 건 ‘환경 정책 후퇴’라는 것이다.
반면 고장수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 이사장은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다행”이라며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규제 비용까지 올라간다면 이는 폐업하라는 소리”라고 했다.
이번 일회용컵 사용 허가는 식당 카페 등 매장 내에 적용되는 것으로, 소비자가 테이크아웃용 일회용 종이컵을 반환하면 개당 300원을 돌려주는 일회용컵 보증제와는 상관이 없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