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가계대출이 7개월 연속 증가했다. 증가폭도 다시 확대 흐름으로 전환됐다. 금융당국과 한국은행 등이 가계부채 축소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성과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금융위원회는 "과거 어느 시기와 비교해도 가계부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가계대출 증가폭 다시 확대
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10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86조6000억원으로 한달 새 6조8000억원 증가했다. 4조8000억원이 증가한 지난 9월에 비해 증가 폭이 2조원 넘게 확대됐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지난 4월부터 7개월 연속 증가세가 이어졌다. 4월 2조3000억원 증가한 이후 5월 4조2000억원, 6월 5조8000억원, 7월 5조9000억원. 8월 6조9000억원 등 증가폭이 확대됐다. 지난 9월 증가폭이 하락했다가 한달만에 다시 확대흐름으로 전환된 것이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전세자금대출 등 주택담보대출은 5조8000억원 증가했다. 전달 6조1000억원보다 증가폭이 소폭 줄었다. 하지만 1조3000억원 감소했던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이 1조원 증가로 전환됐다.
윤옥자 한은 시장총괄팀 차장은 "10월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9월보다 다소 확대된 것은 추석 상여금 유입 효과, 분기별 부실 채권 상·매각 등 계절적 요인이 9월에 작용한 뒤 10월에 해소된 영향이 컸다"고 분석했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에 대해선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기 전 신청한 대출들이 실행되고 있어 아직 가시적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대출도 증가세가 이어졌다. 은행권 10월 기업대출 잔액은 1246조4000억원으로 9월에 비해 8조1000억원 증가했다. 대기업 대출이 4조3000억원, 중소기업 대출이 3조8000억원 증가했다.
금융위 "가계부채 안정적으로 관리"
10월 가계대출이 증가흐름으로 전환되면서 최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 금융당국 수장들의 "가계부채를 관리" 발언이 공수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추 부총리는 가계부채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할 수준"이라고 했고, 김 위원장은 "양적·질적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이 총재는 자신의 한은 총재로서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로 가계부채 축소를 꼽기도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금융당국은 가계부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금융위는 이날 '최근 가계부채 관련 주요 이슈 Q&A' 자료를 내고 "과거 어느 시기와 비교해도 가계부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위는 "윤석열 정부 들어서(2022년 2분기~2023년 2분기) 가계부채 총량이 감소했고 연간 가계부채 증가율도 0% 수준"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과거 10년 연평균 가계부채 증가율이 6.6%에 달하는 것에 비해 현 정부 들어서는 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는 급격히 늘어난 가계부채를 대부분 국가에서 축소한 것에 비하면 성과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파악된다. GDP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고점 대비로는 하락했지만 코로나19 이전 수준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올들어 1분기 101.5%에서 2분기 101.7%로 다시 반등할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도 금융위는 현 정부 들어 주택시장 안정,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안착 등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설명만을 내놨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들에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코로나19 이전 수준까지 끌어내린 것에 대해선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최근 가계대출이 다시 늘어나는 데에는 정부의 오락가락 금리 개입이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최근 윤 대통령이 금융권의 이자 장사를 지적한 이후 은행들은 '상생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낮추고 있다. 포퓰리즘 정책이 가계대출 억제를 막고 있는 셈이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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