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정부는 지난 2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범부처 특별물가안정대책을 발표했다. 농식품부는 이날 물가 가중치가 높고 서민 체감도가 높은 빵, 과자, 커피, 라면,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과 국제 가격 상승세가 유지되고 있는 설탕과 우유 등 주요 품목에 대해 담당 공무원을 지정하는 ‘전담 관리제’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신선식품은 지금도 품목별 담당자가 있지만 가공식품은 그동안 담당자를 별도로 두지 않았다는 것이 농식품부 설명이었다. 신선식품뿐 아니라 가공식품 분야에서도 이른바 ‘빵 과장’ ‘라면 사무관’ ‘커피 주무관’ 등을 두겠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2012년 1월 이명박 정부가 전담 공무원을 지정한 ‘물가관리 책임실명제’와 닮은꼴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드러난 ‘MB식 물가 관리제’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터져 나왔다.
당초 농식품부는 본인들의 내놓은 대책 관련 논란이 일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일 본지의 첫 심층 보도 후 농식품부 관계자들은 당혹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본인들이 내놓은 ‘MB식 물가 관리제’가 큰 논란이 될지조차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물가 관리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도 당혹스러워 한 건 마찬가지였다. 기재부 관계자들은 “MB식 물가 관리제와 이번 대책은 성격이 다르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과거처럼 업계에 대한 일방적 요청이 아니라 민관 상호협력을 통한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농식품부가 계획을 내놓은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전담 공무원을 지정조차 못 한 것도 이런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무를 전담할 직급조차 결정되지 못했다고 했다. 바꿔 말하면 농식품부가 전담 공무원을 지정하는 데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특정 품목을 누가 맡느냐에 따라 해당 품목의 중요성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빵 전담자는 A과장이 맡고, 라면은 B사무관, 커피는 C주무관이 맡는다고 가정한다면 정부가 바라보는 품목의 중요성이 A, B, C 순인 것처럼 시장에서 해석할 수 있다. 통상 직급 무게에 따라 업무의 중요도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담 공무원이 누가 될지 식품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만 농식품부와 기재부가 이번 대책을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확실한 인상을 심어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물가와 민생 안정을 모든 정책의 최우선에 두고 총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농식품부가 전담 관리제까지 도입하는 등 물가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농식품부와 기재부는 ‘MB식 물가 관리제’에 대한 본지를 비롯한 언론사 보도에 대해 단 한 차례도 공식적인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잇단 비판보도에 당혹해 했을 뿐 공식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통상 현안으로 떠오르거나 당초 의도와 달리 흘러가는 보도에 대해 틈만 나면 보도 설명자료를 내놓는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바꿔 말하면 농식품부와 기재부 모두 굳이 부연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 되레 환영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언론과 학계 등에서 물가 전담 관리제에 대한 폐해가 잇따라 지적되는데도 정부가 가만히 있는 것에 비춰볼 때 물가 안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기업들을 대상으로 물가 압박이 더욱 심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경민/박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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