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침체 속에서도 투자 증가세가 두드러진 분야가 있었다. 반도체 등 딥테크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는 몇 년간 꾸준히 자금이 몰렸고, 전기차 시대를 이끌 충전기·배터리 등 관련 분야는 2년 새 투자가 세 배로 증가했다. 팬데믹이 종식되면서 트래블테크 스타트업도 재기의 날개를 펴고 있다.
8일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 3분기 집행된 신규 벤처투자액은 1조444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5% 증가했다. 올 2분기와 비교하면 8.6% 늘어났다. 다만 1~3분기 누적으로 보면 벤처투자액은 3조6952억원으로 지난해 동기(5조4372억원) 대비 32% 적다.
지속되는 투자 혹한기는 세계적인 추세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3분기 전 세계 벤처투자액은 646억달러(약 86조7000억원)로 2분기 대비 11% 늘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23% 줄었다. 1~3분기 누적으로 놓고 보면 45% 감소했다.
올해 가장 큰 투자를 유치한 전기차 회사는 대영채비다. 이 회사는 지난 6월 스틱인베스트먼트와 KB자산운용으로부터 1200억원을 조달했다. 2016년 설립된 이 회사는 급속충전 분야 국내 1위 사업자다. 전국에 8000여 기의 급속충전기 인프라를 보유했다. 월 1만~2만원대의 구독 요금제를 선보였다.
완속충전기 분야 선두권 업체인 에버온은 7월 500억원 규모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LG CNS 자회사로 출범해 2016년 분사한 이 회사는 회원 10만 명, 충전기 2만5000여 기를 보유했다. 그 밖에 자율주행 충전 로봇, 카트형 충전기 등을 내놓은 에바는 7월 시리즈B 투자 라운드에서 220억원을 끌어모았다. 삼성전자 사내벤처 ‘C랩’ 분사 기업인 이 회사는 지금까지 전국에 완속충전기 2만 기를 공급했다.
데이터처리가속기(DPU)를 만드는 시스템반도체 스타트업 망고부스트는 700억원대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DPU는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시스템 운영 시 사용되는 서버의 과부하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시스템반도체의 한 종류다. 김장우 서울대 교수가 지난해 창업한 이 회사는 시드(초기) 투자에서 130억원을 끌어모으며 주목받기도 했다.
반도체 설계 솔루션 회사 세미파이브도 675억원을 조달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국내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 중 한 곳이다. 또 스마트팩토리 외관 검사 솔루션을 가진 세이지리서치는 155억원을 끌어모았다. 2017년 문을 연 이 회사는 딥러닝을 기반으로 제품 외관에 문제가 없는지 등을 파악하는 솔루션을 내놨다.
캠핑용품 브랜드로 유명한 헬리녹스는 1200억원을 유치해 이 분야에서 올해 가장 큰 금액을 조달했다. 또 ‘한 달 살기’ 숙소 예약 플랫폼인 리브애니웨어는 시리즈A 투자로 50억원을 유치했다. 이 플랫폼은 엔데믹을 타고 앱 다운로드 130만 건, 연 거래액 140억원을 넘어섰다. 또 여행 계획 솔루션을 제공하는 글로벌리어는 빅베이슨캐피털, 케이넷투자파트너스 등으로부터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O2O(온·오프라인 연계) 숙박 스타트업 지냄, 베트남 호텔 예약 서비스 고투조이 등도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인바운드 여행 플랫폼 크리에이트립의 임혜민 대표는 “국내 방문 외국인 여행객이 다시 월 100만 명을 넘을 정도로 늘어났다”며 “여행산업 자체가 활기를 띠고 있어 앞으로 우상향하는 시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유망 분야에는 계속해서 투자가 몰릴 것으로 진단했다. 맹두진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부사장은 “딥테크와 소부장 분야의 투자는 지속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며 “거시 환경의 불확실성 지속이 우려되지만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포함한 AI 발전과 로봇의 적용이 산업계 전반과 일상에 폭넓게 스며들고 있어 수익모델을 갖춘 기업에 대한 투자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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