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러 층위와 모호한 경계로 혼돈 그 자체인 언어 복잡계에서 방언, 사투리는 서자(庶子) 취급을 받고 있다. 표준어의 잘못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러나 표준어가 자기 땅켜를 가진 만큼 사투리도 자기 구름층을 내려깔고 있다. 무 자르듯 깍뚝썰기로 요리할 순 없다. 표준어 정책을 찬찬히 재고해야 할 이유다.
비표준어라는 말에는 편견이 담겨 있다. 잘못된 말, 쓰지 말아야 할 말이라는 족쇄다. 국어기본법은 공문서와 교과서엔 반드시 표준어를 쓰도록 명시했다. 언론과 방송에도 표준어 확산에 책임을 지웠다. ‘택도 없다’를 ‘턱도 없다’로 고쳐 쓸 때마다 기자가 고민에 빠지는 연유다. 택도 없다는 경상, 전라, 함경 방언이다.
본질적으로 쓰지 못할 말은 없다. 말이 먼저 있고 난 다음에 규범이 생긴 것이니 말이다. ‘까칠한 금자씨’를 ‘까다로운 금자씨’로 무던히 고친 시절이 있었다. ‘성격이 부드럽지 못하고 어딘가 모난’이라는 뜻을 가진 표준어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까칠하다’는 ‘까다롭다’의 잘못이 아니라 새로운 언어다.
표준어만이 전가의 보도인 양 대접하는 현실을 파편해야 한다. 표준어는 전보(電報) 시절의 소통 산물이다. 지금은 뱅크런조차 손가락 끝에서 순식간에 이뤄지는 시대다. 문해력이 문제지 지역·시간 제약 때문에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사투리를 공문서와 교과서에 못 쓰는 것은 그렇다 쳐도 언론과 방송에서 재갈을 물리는 것은 가혹하다.
사투리는 한국어의 원류다.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제2외국어까지 공부하는 마당에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국어 과목에 ‘문학’처럼 한 자리 마련하자. 제주특별자치도는 2007년 ‘제주어 보정 및 육성 조례’를 제정한 뒤 ‘제주어표기법’을 확정하고 제주어 보존·확산에 힘을 쏟고 있다.
“어쩐지 마음이 언니가 뽀땃하게 끓여 온 전복죽처럼 뽀땃해지는 느낌이었다.”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나오는 저 ‘뽀땃’을 대체할 표준어가 있을까.
새로운 말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 있는 말이라도 오롯이 쓰면 한국어 어휘의 빈약함을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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