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병제를 시행하는 미국에서는 육군을 비롯한 군대가 광고를 크게 한다. 병력이 가장 큰 육군이 당연히 가장 많은 예산을 쓴다. 지난해 현역 육군 소속 병력을 모델로 쓴 광고를 만들어 집행했는데, 신병 6만 명 모병 목표에 4만5000명만 간신히 채우는 저조한 실적을 거뒀다. 절치부심한 미국 육군은 마블 영화에서 ‘캉’으로 출연한 유명 흑인 배우 조너선 메이저스를 모델로 기용했고, 마치 영화와 같은 대작 스펙터클 광고를 제작했다.
1775년 미국 독립전쟁부터 1·2차 세계대전과 2005년의 카트리나 태풍 때 구조작전까지 그야말로 미국 육군의 화려한 역사를 메이저스의 힘 넘치는 내레이션으로 표현한 광고였다. 이 광고를 3월 미국 대학 농구 결승 토너먼트 기간에 맞춰 선보였다. 초반 64강전부터 서서히 열기를 고조시키고, 4강전과 결승전에서 물량 공세를 펼칠 계획이었다. 대학 농구의 주요 시청자이자 모병 대상의 핵심인 젊은 유색인종을 겨냥한 수순이었다. 게다가 메이저스는 미국에서도 명문으로 꼽히는 예일대 출신으로, 교육 수준이 낮은 이들만 군에 지원한다는 선입견까지 방어할 수 있는 모델이었다. 미국 육군은 올해 모병 인원을 작년보다 많은 6만5000명으로 설정했다고 발표할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8강전이 끝난 직후 메이저스가 여자친구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연행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메이저스의 폭행 혐의를 두고 재판이 계속 진행 중이지만 잘잘못을 떠나 그 대작 광고는 채 피지도 못하고 꺾여버렸다.
이렇게 모델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을 ‘모델 리스크’라고 한다. 모델 리스크가 발생하면 마치 조건반사처럼 “인공지능(AI)으로 만든 가상인간 모델을 써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가상인간 모델의 장점은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작이 가능하면서 가격이 싸고 늙지 않는다는 점도 언급된다.
‘가상인간 모델 최초의 슈퍼스타’로 불리는 브라질 혈통의 미국인 여성 릴 미켈라가 지난달 모 자동차 회사의 모델로 나섰다. 2018년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선정되고 2021년 광고 모델로 130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 미켈라였다. 그런데 은퇴 상태의 퇴물을 모델로 기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럴 만도 했다. 미켈라의 틱톡은 2022년 11월부터 아무 활동이 없고, 유튜브 채널에는 지난 2년 동안 새로운 동영상이 올라오지 않았다. 인스타그램도 한 달에 세 번만 포스팅한다. 당연히 팬들의 참여와 호응도 뚝 떨어졌다.
기업들이 가상인간 모델을 등장시키며 대대적인 홍보를 한다. 탄생 서사 및 세계관, 새로운 특징을 장착하고 나온 모델들이 각광받고 다수의 광고와 프로그램에 등장한다. 유감스럽지만 그 관심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들의 매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이야깃거리가 제공돼야 한다. 창조적 콘텐츠를 만드는 비용이 들어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바로 참신함을 잃어버린 연예인처럼 된다. 창의성이라는 연료가 계속 주입되지 않는 가상인간은 쉬이 늙는다. 차라리 사소한 사고를 종종 치는 말썽쟁이 유명인이 나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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