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땐 논의조차 안하더니…巨野 '총선 볼모'된 파업조장법

입력 2023-11-08 18:26   수정 2023-11-16 16:13


“거의 20년 전부터 고민해왔다. 노동조합법 개정안에는 민법상의 손해배상 원칙이나 민사집행법·신원보증법 등 기존 법률의 원칙을 흔드는 특례조항이 많다. 신중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1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한 박화진 당시 고용노동부 차관은 ‘파업조장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파업 근로자에 대한 손해배상 제한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 법을 국정과제 중 하나로 꼽았지만 실제로는 추진하지 않았다. 국회에서도 이날 회의를 마지막으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파업조장법에 독소 조항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파업조장법, 뭐가 문제길래
우선 파업조장법은 사용자 개념을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에서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했다. 하청업체나 협력사 직원들이 원청업체와 대기업을 사용자로 규정해 교섭을 요구하고, 파업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수많은 원·하청으로 이뤄진 국내 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 법에서 규정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의 개념도 모호해 노사 교섭 때마다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상민 변호사는 “사용자가 노조의 교섭 요구를 거부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헌법상 죄형 법정주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파업에 따른 손해배상과 관련해 기업의 입증 책임을 강화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금까지는 불법파업을 강행한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하고 있지만, 이 법 개정안은 조합원별로 기업이 불법행위와 구체적인 손해 발생액을 명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사권이 없는 기업이 파업 참여자 한 명 한 명의 행위를 규명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결국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자체를 막는 결과를 낳는다는 분석이다.

파업 허용 범위를 ‘근로조건 결정’에서 ‘근로조건’으로 바꾸는 내용도 포함했다. 급여, 근로시간 등을 넘어 채용과 정리해고 등 사용자 고유 권한과 관련해서도 파업이 가능해진다.
○총선 앞둔 민주당의 계산은
이 같은 문제에도 정권 교체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파업조장법 처리에 힘을 실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3건에 그친 관련 법안 발의도 윤석열 정부 들어 7건으로 늘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 여론을 의식한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 6일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을 찾아가 김동명 위원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노사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며 법안 처리를 약속했다. 비공개 회동에서 한국노총 측은 “민주당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노동자 편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9월에는 김 위원장이 단식 농성 중이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찾아 파업조장법 처리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이 대표는 “(김진표) 의장님이 (본회의 상정을) 많이 망설이는 것 같다”며 “9월에는 처리하겠다”고 답했다. 한국노총은 내년 2월 대의원대회를 열어 지지 정당 결정 등 총선 방침을 확정할 예정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문재인 정부 때 사실상 포기했던 파업조장법을 지금 띄운 건 총선에서 노동 세력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정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분명한 만큼 ‘근로자 대 재벌’ 구도로 지지층을 확장하겠다는 의도도 읽힌다”고 분석했다.

노경목/원종환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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