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매물이 늘어나면 가격이 떨어질까요? [더 머니이스트-심형석의 부동산정석]

입력 2023-11-09 09:02   수정 2023-11-09 11:19

서울 아파트 매물이 사상 최초로 8만 건을 넘어섰습니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2023년11월3일 현재 서울 아파트 매물은 8만452건으로 집계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아실이 해당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20년 11월 이후 가장 많은 수치입니다.

해당 시점의 매물 건수를 한달 전 매물(7만465건)과 비교하면 14.2% 증가했습니다. 한 달 사이에만 새로운 매물이 1만 건 가까이 늘어났다는 말입니다. 매물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좋은 신호는 아닙니다. 언론과 방송에서도 곧 아파트 매매가격이 떨어질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과연 매물이 늘면 가격이 떨어질까요?

매물이 늘어나는 이유는 매도 예정자와 매수 예정자 간 호가 차이 때문입니다. 대부분 주택가격이 반등하는 시점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매수 예정자는 항상 낮은 금액을 원합니다. 특히 가격이 오를 때는 예전 가격을 더욱 기대합니다. 급매물만 거래가 잘되는 이유입니다. 반면 가격이 하락하는 시점에서는 호가 차이가 크지 않고, 급매물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거래가 늘어나게 됩니다. 금융위기가 발행했던 2008년께를 생각하면 됩니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2008년보다 2009년 아파트 매매거래 건수가 늘어났습니다. 전국적으로 2008년 58만3000건이었던 매매 거래건수는 2009년 63만2000건으로 증가했고요. 서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6만3000건이었던 거래건수는 7만9000건으로 늘어났습니다. 금융위기 때는 주택시장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매수 예정자와 매도 예정자 간에 호가 차이가 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면 매도 예정자는 빨리 싼 가격에 팔 필요가 없어집니다. 조금 더 기다리면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싼 가격에 빨리 팔면 왠지 손해를 보는 기분을 느낍니다. 매도 호가가 올라가니 매수자들이 붙지 않는 겁니다. 매도호가와 매수호가의 차이 수준이 거래량에 영향을 미치고 거래가 되지 않으면 매물은 쌓이게 됩니다.

2023년 6월에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동일한 회사인 아실에서 집계한 6월18일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6만5562건이었습니다. 규제를 대거 완화할 것이라고 발표한 1·3대책 당일(4만9774건)과 비교하면 31.7%나 증가한 규모였습니다. 같은 시기 강남구는 무려 49.3%나 증가했습니다.

시장 회복세가 강해지자 매도 호가를 높여 집을 내놓는 매도 예정자들이 늘어난 원인이 큽니다. 하지만 급매물이 소진된 이후 높아진 호가를 수용할 매수 예정자들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서 매물이 시장에 쌓였던 겁니다. 그후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매수자가 매도자의 가격을 수용하면서 거래가 늘어나고 강남권의 전 고점대비 매매가격 회복률은 95%에 이르게 됩니다.

2023년 생각보다 빠르게 전국의 아파트 가격이 반등했지만 그 수혜는 대부분 서울의 주거선호지역에 집중되었습니다. 서울 외곽이나 지방의 경우에는 여전히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지역이 더 많습니다. 집을 팔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고금리로 인해 집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매물을 내놓는 매도 예정자들은 매매와 전세 심지어 월세를 함께 내놓는 경우도 많습니다. 무엇이라도 빨리 거래되는 것을 선택하겠다는 절박함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매물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매물이 늘어나는 점은 주택시장에 긍정적인 요인은 아닙니다. 하지만 단순히 매물이 늘어났다고 주택가격이 하락하지는 않습니다. 최근 들어 매물이 가장 적었던 시점은 작년말이나 올해초였습니다. 당시 주택가격은 가장 낮았던 걸로 현재 판명되고 있습니다. 주택시장은 다양한 변수에 의해 좌우됩니다. 허위매물이 넘쳐나고 전근대적인 부동산 중개시장이 판치는 우리나라에서 매물만보고 주택시장을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알았으면 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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