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매대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나타낸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주요 채널로 떠오른 편의점을 두고 식품업계 관계자들이 하는 말이다. 트렌드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는 편의점 매대가 최근 붉게 물들었다. 라면뿐만 아니라 과자, 냉동만두까지 매운맛 경쟁이 확대되면서 편의점 매대를 매운맛 제품이 가득 채웠다.
버거, 치킨, 피자 등 외식업계도 기존 제품의 맵기를 끌어올린 신제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신제품 스코빌지수를 보면 ‘한국인의 매운맛’이라는 농심 신라면이 순하게 느껴질 정도다. 대한민국은 왜 매운맛에 빠졌을까.
‘매운맛 경쟁’은 올여름 라면 업계에서 시작됐다. 지난 8월 14일 농심은 기존 신라면보다 두 배 이상 매운 ‘신라면 더 레드’를 한정 출시했다. 초반부터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며 80일 만에 1500만봉 이상이 팔리자, 농심은 해당 제품을 정식 생산하기로 했다.
경쟁사도 속속 가세했다. 불닭볶음면 제조사 삼양식품은 더 레드 출시 사흘 뒤인 17일에 매운 국물라면 ‘맵탱’을 선보였다. 보름 뒤에는 세븐일레븐이 자체브랜드(PB) 컵라면 ‘세븐셀렉트 대파라면’에 오뚜기의 매운 맛 라면 ‘열라면’을 컬래버한 ‘세븐셀렉트 대파열라면’을 선보였다.
라면 3사가 경쟁적으로 선보인 신제품은 업계의 유행이 됐다. GS리테일에 따르면 GS25에서 판매중인 상품 중 ‘매운’ ‘핫’ ‘스파이시’가 포함된 상품 수는 2021년 117개에서 지난해 142개, 올해(1~10월) 174개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올해 1~10월 해당 카테고리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7%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롯데웰푸드도 시중의 매운 만두보다 더 매운 ‘쉐푸드 크레이지 불만두’를 같은 날 출시했다. 사천지방 고추로 매운맛을 냈다. 스코빌 지수 2만3000SHU에 달하는 특제 소스로 맵기를 끌어올렸다.
치킨 프랜차이즈 굽네는 스테디셀러 고추바사삭 출시 10주년을 맞아 매운맛을 강화한 ‘마라 고추바사삭’을 지난 6일 선보였다. 출시 3일 만에 8만 마리 넘게 판매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13일부터는 배달의민족 이외에 다른 채널에서도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라 판매량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오리온의 ‘꼬북칩 매콤한맛’, 맥도날드의 ‘맥크리스피 스리라차 마요’ 롯데리아 ‘마라로드버거’ 모두 올해 시장에 나온 제품들이다.
지금은 삼양식품이 2012년 정식 출시한 불닭볶음면이 매운 라면의 계보를 잇고 있다. ‘반짝인기’에 그칠 것이라고 여겨졌던 마라탕, 엽기떡볶이 등은 10~20대의 인기 식사 메뉴로 자리 잡았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두 가지 이유를 꼽는다. ‘불황에는 매운 음식이 잘 팔린다’는 속설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다. 캡사이신 성분이 일시적으로 스트레스를 완화해주기 때문에 경기가 어려우면 매운 음식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진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SNS의 발달이다. 매운 음식을 먹고 SNS에 인증을 남기는 것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놀이 문화로 정착했다는 것이다. 매운 음식의 붉은빛, 음식을 먹고 땀을 흘리는 모습 등은 영상으로 담았을 때 더 잘 표현되기 때문에 짧고 굵은 영상 위주의 SNS에서 충분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10~20대의 식사는 영양분을 섭취한다는 의미를 넘어 체험의 영역으로 확장했다”며 “이들은 동일한 매운 제품을 반복적으로 구매하기 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매운 음식을 구매해보는 양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매운맛은 메뉴 개발이 용이하다. 문경선 유로모니터 한국 리서치 총괄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그것을 놀이로 즐기는 트렌드가 먹거리 영역에 쉽게 녹아들었다”며 “한국 음식 특성상 매운맛의 강도를 높여 새 제품을 출시해도 소비자들이 거부감 없이 도전해볼 수 있어 기업들의 매운 음식 출시가 잇따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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