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5개년 계획(1953~1957)' 당시 중국의 농업도 조직적 변화를 겪었습니다. 1953년 가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곡물 및 기타 원자재의 구매와 유통을 독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정책은 부농과 곡물 상인 사이의 관계를 끊어버려서, 곡물에 대한 투기로 이익을 얻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중국 정부는 곡물 생산량은 늘리고, 농업에 투입되는 인력과 자원을 줄이고 싶었습니다. 따라서 농업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는데요. 농업에 자원을 원활하게 투입하고, 정부가 농산물에 직접 관여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농민들을 집단 단위로 묶어 관리하려고 한 겁니다.
농민의 집단화 과정은 1955년부터 1958년까지 계속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 5~7개 가구로 이뤄졌던 작은 규모의 집단은 마을 단위의 농업 생산자 협동조합으로 변모했습니다. 마을 단위의 농업협동조합에 소속된 가구는 자신들이 생산에 기여한 곡물 수확량의 일부를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마을 단위의 협동조합이 자리를 잡자, 이 협동조합들은 상위 구조의 고급 협동조합으로 발전했습니다. 고급 협동조합에 속한 가구의 소득은 전적으로 그 가구가 기여한 노동량에 달려있었습니다. 즉 공동생산·공동소비 체계가 구축된 것이다. 나아가 중국 정부는 채소, 과일 및 가축을 기르는 작은 사유 토지를 보유를 허락했습니다. 중국 농업산업의 집단화 과정은 천천히 시작됐습니다. 그러다가 1957년에 이르러서는 전체 농가의 약 93.5%가 고급 생산자 협동조합에 가입할 정도가 된 겁니다.
농업이 집단화하며 규모의 경제 효과로 농업의 효율성이 높아졌고, 농업에 투입되는 노동력이 줄었습니다. 이는 산업 노동자 수의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중국의 산업 노동자는 이 기간에 600만명에서 1000만명으로 증가햇습니다. 산업 작업장 역시 '단웨이'(?位) 라고 불리는 노동자 집단으로 조직화했습니다. 이들에게는 보조 주택, 영구적인 직업, 교육 및 의료 서비스가 제공됐습니다.
사회주의 체계 구축을 위한 노력을 바탕으로 중국 경제는 대규모 현대화를 시도했습니다. 1950년대 중반, 이러한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였습니다. 경제가 활성화되자 중앙 정부는 국가 계획 통제를 약간 완화하고 시장의 역할을 조금 확대해 지방 및 지역 정부의 시장 참여가 늘었습니다. 1956년 9월 제8차 당대회에서는 이러한 조치를 공개하며 '소규모 상품'은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으며 농민들은 공예품 제작이나 가금류 사육과 같은 부업을 개발해도 된다고 발표했습니다.
1950년대 중국 경제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영 인재가 부족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 노동자를 관리자로 승진시키려 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경영 인재를 키우고 유치하는 동시에 노동 계층이 승진을 위해 자신을 통제하는 정치적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홍기훈 홍익대학교 경영대 교수, 메타버스금융랩 소장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