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금융위원회가 대출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방침을 발표하자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렇게 탄식했다. 금융당국이 은행들의 금리 인하 경쟁을 부추기는 정책을 펴면서도 가계부채 증가세는 억제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데, 이는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모순적 주문이란 것이다.
금융당국의 모순적 주문은 이날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통해 나왔다. 금융위는 회의 결과를 설명하는 보도자료를 통해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과도해지지 않도록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를 밀착 관리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높은 은행에 대해서는 관리방안 협의 등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엄포도 내놨다. 그러면서 금융위는 “(차주의) 상환 부담을 경감할 수 있도록 중도상환수수료 한시 면제 등의 방안을 금융권과 ‘적극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에 대해 금융권에선 ‘뜨거운 아이스커피’를 주문한 것이란 평가가 잇따랐다. 중도상환수수료를 없애면 대출받은 차주 입장에선 금리가 0.01%포인트라도 낮은 곳으로 대출을 갈아탈 게 뻔하다. 따라서 은행들은 고객을 붙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금리를 낮출 수밖에 없고, 금리가 낮아지면 다시 대출은 늘어나게 된다.
중도상환수수료 면제가 금리 하락 및 대출 증가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는 이미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증명되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주요 은행 중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주택담보대출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해 오고 있다. 이 은행의 주담대 평균 금리는 지난 9월 기준 연 4.39%로, 주요 은행 중 가장 낮다. 카카오뱅크의 주담대(전·월세자금 대출 제외) 잔액 역시 작년 9월 말 5000억원에서 올 9월 말 8조원으로 1년 새 16배로 급증했다.
금융위는 “가계부채를 축소하려면 신규 대출을 줄이거나 기존 대출을 쉽게 갚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중도상환수수료 면제는 기존 대출을 쉽게 갚도록 돕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도상환수수료 면제로 대환대출 금리가 낮아지면 신규 대출 금리도 함께 낮아져 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인위적인 시장 개입은 언제나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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