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은 자주국방의 절박함에 무기 국산화를 전담할 연구소 설립을 지시한다. 1970년 8월 국방과학연구소(ADD)는 그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해외 유치 과학자와 같은 S급 인재가 대거 투입됐다. 한국 중공업 개척의 숨은 주역 김재관 박사, 미국 MIT 출신 이경서 박사, 군 장교 출신 핵물리학자 구상회 박사 등이다. 극비 기관으로 보안을 위해 ‘홍능기계’ ‘대전기계창’ 같은 위장 명칭을 썼다.
ADD 초창기 발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은 지대지 유도탄 ‘백곰’ 개발사업이었다. 과학자 800여 명이 달라붙은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무수한 시행착오와 함께 레이더 오작동으로 포기 직전 상황까지 몰렸으나, 한 연구원이 홧김에 빈 담뱃갑의 은박지를 사용해 본 것이 적중한 ‘세렌디피티’ 일화도 있다. 1978년 9월 26일 박 대통령이 참관한 가운데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박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12번이나 ADD를 찾을 정도로 큰 애착을 보였는데, 그날이 마지막 방문이었다.
운도 따랐다. 노태우 정부 때 러시아 경협자금으로 빌려준 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돈 대신 대납받은 전차, 장갑차, 미사일, 헬기 등이 후일 무기 개발에 적잖은 도움을 줬다.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이뤄진 이른바 ‘불곰 사업’이다.
ADD의 기술력은 이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대공 미사일 요격 시스템 천궁에 매료된 ‘미스터 에브리싱’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ADD를 찾아 “통째로 사고 싶다”고 했을 정도다.
신응균 ADD 초대 소장의 비서를 했던 재미동포 강춘강 여사(80)가 “방산 발전을 위해 써달라”며 100만달러 상당의 유산을 ADD에 기부했다. 그는 폴란드 무기 수출을 보고 기부를 결심했다고 했다. 고국을 떠나 있으면서도 우리 안보에 거금을 쾌척한 강 여사의 애국심에 경의를 표한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