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전략은 국가의 존망과 직결된다. 안보전략의 제1 가치는 외침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는 것이다. 또 안보전략은 핵심 가치, 세계질서 변화, 경제력, 지정학적 조건 등 대내외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마련해야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국가 간 충돌은 늘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안보전략이 절실하다.
특히 북한의 남침 야욕과 핵 위협에 노출된 위중한 우리의 안보 상황을 고려한 전략이어야 한다. 물론 최선의 안보전략은 어느 나라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주·자립적으로 생존과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국력이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지정학적 조건과 남북 분단의 숙명적 상황 때문에 자주·자립적 안보전략 수립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한·미 동맹에 의존해 취약한 안보를 보완해왔다.
대다수 국가는 자강(自强)과 동맹(同盟)의 적절한 결합·조합을 통해 안보전략을 최적화한다. 즉 자주·자립의 안보·군사적 힘이 강하면 자강에 무게중심을 두고, 그 힘이 모자라면 동맹으로 모자라는 자강을 보충한다. 그러나 자강이 너무 취약하면 자강은 물론 동맹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늘 자강 강화에 많은 자원을 투자해왔다. 중국 청나라 말기의 사상가 양계초(梁啓超)는 “조선이 망한 까닭은 조선의 무능과 부패 때문이지 일본이 아니다”라며 자강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양계초의 경고는 지금도 유효하다.
한·미 동맹은 성공한 동맹 중 하나다. 한·미 동맹 70년은 북한의 도발 야욕을 억제하고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동맹이 70년 지속되면서 부지불식간에 나쁜 의존적 습속(習俗)이 우리 안보 속에 체화됐다. 즉 한반도에서 안보 문제가 발생하면 미국이 해결해준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이는 자강 정신을 심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잘못된 관행이다.
한국 좌파의 삐뚤어진 사고에서 나온 용어와 행태도 자강을 정신적·제도적·실질적으로 훼손했다.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는 궤변과 ‘사드 전자파 참외’ 괴담은 정신적 자강 훼손이었다. 2018년 ‘9·19 군사합의’는 군사력의 심대한 저하를 가져온 제도적 훼손이었고, 국가보안법 위반 재판 지연은 실질적으로 자강을 훼손했다.
다양한 형태의 자강 훼손은 안보에 치명적 위협으로 작용한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성공은 네타냐후 정부의 내치 불안(=자강 훼손)과 우월한 무기체계에 대한 자만 때문이다. 우리 상황도 이스라엘과 비슷하다. 자강 훼손은 일상화돼 있고 북한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경제적 우월에 자만하고 있다. 이 위험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심각한 문제다.
안보의 핵심은 군사력이며, 군사력은 주로 경제력에 의존해 구축된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된 지금 안보전략은 자강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 즉 ‘자강 기반 동맹’으로의 기조 전환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도 우리가 100% 부담해 동맹의 조건을 유리하도록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의존적 동맹의 습속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자강 기반 동맹’이 순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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