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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리더의 시각
임태섭 크레스트아시아자산운용 전략자문(성균관대 MBA 교수)
임태섭 크레스트아시아자산운용 전략자문(성균관대 MBA 교수)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어디서든 통화량 현상” ? 밀턴 프리드만
미 장기국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이머징 국가 통화가 일제히 절하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 무위험 자산인 미 국채 수익률이 상승하면서 외환시장과 채권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위험자산인 이머징마켓 통화와 국채에 대한 선호도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하락하는 데에는 물론 미 국채 금리의 상승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미 달러의 유통량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 연준은 작년 2/4분기부터 양적긴축(QT)를 통해 코로나 위기에 대응해 급격히 확대했던 통화량을 흡수하고 있다.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이 급격한 경기침체를 유발하게 되자 연준은 금융시스템의 신용경색을 방지하고자 양적완화(QE)를 공격적으로 실시하였다. 그 결과 미국의 통화량, 즉 M2 (현금과 요구불예금, CD 등 현금성 예금)가 2020년 연 16.5% 증가하며 총수요를 자극하여 경기를 침체로부터 급격히 견인하였다.
하지만 지나친 통화량 증가는 총수요 과열로 치닫으면서 인플레이션이 급등하게 된다. 총수요 급등은 일차적으로는 글로벌 상품 공급망 붕괴와 겹치면서 상품가격의 급등을 초래했고 곧이어 경제 리오프닝과 함께 서비스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노동력 부족과 임금상승으로 이어졌다. 연준은 2021년말에야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었다는 기존의 입장을 뒤집고 이듬해부터 급격한 금리인상과 대규모 양적긴축을 통해 총수요를 억제하려 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임금상승-가계소득상승-소비증가-인플레이션의 연결고리가 쉽게 끊어지고 있지 않다.
그림 1: 미 통화량의 급증과 반전
출처: US FED, Krest Asia
그림 2: 양적완화와 통화승수 그리고 통화량
출처: US FED, Krest Asia
글로벌 금융위기와 통화승수 급락
연준은 2008년 10월 리만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세계금융위기가 발발하며 주요 금융기관들이 급격히 자산규모 축소에 나서자 양적완화를 통해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여 신용경색을 완화하고 금융시스템을 안정시켰다. 금융기관의 위축으로 인한 통화승수의 급락과 이에 따른 신용경색을 양적완화를 통해 안정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통화승수 위축으로 대규모 유동성 공급에도 M2 통화량은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총수요를 자극하지 않았고 인플레이션도 발생하지 않았다.
팬데믹 위기시 양적완화로 통화량 급증
연준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실시했던 금리인하, 양적완화의 조합이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면서 위기대응책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이 발생하며 경기가 급격히 침체로 빠져들자 연준은 지체없이 금리인하와 양적완화의 조합을 휠씬 더 공격적으로 실시하게 된다.
그림 3: 2020년 양적완화는 통화량 급증으로 이어져
출처: US FED
하지만 백신접종과 함께 2021년 경제활동이 재개되고 경기가 급격히 반등하면서 금융기관들의 자산규모 축소와 같은 통화승수 위축은 나타나지 않았고 연준의 대규모 유동성 투입은 그대로 통화량 급등으로 이어졌다. 또한 적극적 재정지출로 가계 이전소득이 급증하면서 통화량 증가를 부축였다. 통화량 급증은 총수요를 자극하였고 공급망붕괴와 노동시장 참여율 하락과 겹치면서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달러 유동성 급격한 축소 국면 진입
인플레이션이 급등하여 좀처럼 하락하지 않자 연준은 2021년부터 급격한 정책반전을 꾀하게 된다. 2021년 3월부터 지금까지 연준은 정책금리를 5%포인트 인상하였고 동시에 2022년 6월부터 연준 자산규모 축소를 통해 양적긴축도 실행하며 유동성 흡수에 나섰다. 양적긴축 규모는 초기에는 월 450억 달러에서 시작하여 2022년 9월부터는 월 900억 달러 규모로 확대되었다. 연준이 자산규모 축소에 나서면서 미 국채시장은 민간부문이 연준의 매수 공백을 대체하게 되자 M2가 축소되기 시작한다. M2는 2022년 7월부터 올 8월까지 1933년 이후 최대폭인 3.9% 하락하였다.
연준은 90년대 이후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통화량과 인플레이션의 관계에 전혀 비중을 두지 않고 있다. 옐렌 전의장이 언급한대로 연준은 양적긴축이 시장과 경제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속도로 무대 뒷편에서 꾸준히 진행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융기관들이 연준의 양적긴축 만큼의 신용확장을 창출해내며 통화승수가 증가하지 않는다면 통화량은 결국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필자도 통화량이 정상적인 범위 내에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것으로 인플레이션이 크게 영향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통화 공급량의 변화가 통화승수의 변화와 겹치면서 통화량의 증가나 감소가 임계치를 넘어서는 경우에는 인플레이션과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준의 양적긴축은 통화승수의 하락과 겹치고 있다.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은행들은 신규대출을 축소하고 채권을 매각하고 있다. 미국 은행들의 대출태도지수가 급격히 위축되며 신규대출규모가 감소하고 있고 양적긴축이 실시된 2022년 9월이후 미국 은행들은 6,00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이미 매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존스홉킨스 대학의 그린우드 연구원과 헨키교수는 현재의 통화량 축소가 1987년 블랙먼데이 전의 상황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을 파이낸셜타임즈 기고에서 경고했다. 이들에 따르면 1987년 1월 9.7%에 달하던 M2 증가율은 9월에는 4.9%까지 급락하였고 같은 기간 연준이 더 이상 취합하지 않는 지표인 광의의 통화, 즉 M3는 8.7%에서 3.6%로 하락하였다. 국채시장의 매도세와 통화량 축소의 조합은 결국 그해 10월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 급락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연준의 양적긴축으로 최근의 채권시장과 통화량은 1987년보다 휠씬 급격한 위축세를 보이고 있어 주식시장의 급락과 급격한 경기침체를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연준은 양적긴축이 마무리 되던 2019년 9월 발생했던 금융시스템의 단기 유동성 위기가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단기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달러 유동성의 전반적 축소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까지 유동성 위축이 팬데믹 시기에 투입되어 남아있는 잉여저축과 잉여유동성에 의해 상쇄되고 있어 미국 경기는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동성 축소의 속도로 볼 때 임계치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4.7%~5.0%를 오르내리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 경제권과의 금리차가 벌어져 있는 와중에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 유동성이 빠른 속도로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다는 것은 대표적 위험자산은 이머징마켓 외환, 채권, 주식 가격에 상당한 하방압력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금리상승, 달러 유동성 축소의 다이나믹스가 바뀌기 전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한 이머징마켓 자산은 반등폭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으며 상당한 변동성 위험에 처해 있다.
지난 주 FOMC회의에서 금리동결을 결정한 이후 미 국채시장에서는 연준의 금리인상이 마무리 된 것으로 해석되며 매수세가 유입되어 5%에 근접하던 10년물 국채금리가 큰 폭 하락하였다. 하지만 이번 금리하락은 작년부터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상승 추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만일 시장금리가 더 크게 하락하여 금융여건이 완화된다면 최근 하락세가 둔화되고 있는 인플레이션 상황과 견조한 거시경제 지표를 고려할 때 연준은 또 다시 금리인상에 나서게 될 것이다. 또한 양적긴축은 이번 달에도 지속되고 있다. 이런 금리와 유동성 다이나믹스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는 결국 경기가 침체에 빠지며 인플레이션이 하락하고 연준이 금리인하와 양적긴축 중단에 나서는 경우 밖에 없어 보인다. 이런 시나리오에서도 경기침체로 인해 KOSPI를 비롯한 이머징마켓 주식이 즉각 반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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