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김포시의 서울 편입을 뜻하는 ‘메가시티 서울’ 구상이 정치권은 물론, 지역 여론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여당 대표가 불과 2주 전 밝힌 이 구상은 벌써 국민의힘 내 태스크포스팀 발족과 관련 특별 법안 준비로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용’이란 비판을 해보지만, 반대론으로 비쳐 여론의 역풍을 맞을까 우려합니다. 여당이 “메가시티는 세계적 흐름”이라는 당위론과 “지역의 교통·교육·복지 문제 해결”이란 현실적 이유를 들어 밀어붙이고 있는데, 이게 주민들로부터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가시티 서울 구상은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진행해온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이는 지방자치행정의 효율성 극대화와 경쟁력 강화는 물론, 지역 민의를 잘 반영하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국가적 과제입니다. 유권자 의견을 살펴 차근차근 추진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늘상 선거를 앞두고 이런 이슈가 등장합니다. 행정구역 개편은 선거구 획정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정치적 타협이 간단치 않습니다. 실현 가능성이 어떨지 장담할 수 없는 거죠.
이번 호에서는 국내외에서 어떤 행정구역 개편 시도들이 논란을 불렀고, 선거를 앞두고 빈발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또 그런 정치 행위가 몰고 오는 경제적 영향도 들여다보겠습니다.
정치적 논란 이겨내야 성공할 수 있어요
행정구역 또는 지방행정체제의 개편은 미래 국가 발전의 중요한 틀을 다시 짜는 일입니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자의적으로 획정하는 ‘게리맨더링’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나 행정구역 개편도 선거구를 다시 획정해야 하는 후속 과제를 남기기 때문에 정치적 의도를 완전히 배제할 순 없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행정구역 개편은 김영삼 정부 때 추진됐습니다. 당시 정부는 1995년 지방자치제 본격 실시를 앞두고 도·농복합시 제도를 도입하고 경북 구미시와 선산군을 통합하는 등 정부 수립 이래 최대 규모의 행정구역 개편에 나섰습니다. 이후 2010년 마산·창원·진해시 통합, 2014년 청주시·청원군 통합 등의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대선 전략에서 시작된 수도이전 공약
이와 달리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승리 이듬해인 2003년 추진한 행정수도 이전은 정치적 목적이 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그해 12월 신행정수도건설특별조치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며 행정수도 이전에 전력을 다합니다. 그런데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헌법소원 사건에서 특별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하면서 제동이 걸리는데요, 서울이 수도인 것은 ‘관습헌법’이라는 유명한 논리가 이때 나왔지요. 이후 노무현 정부는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세종시를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정부 부처 대부분을 옮기게 됩니다. 주목할 부분은 겉으론 ‘지역균형발전’을 내걸었지만 “대선에서 재미 좀 봤다”라는 노 대통령의 말처럼 정치적 계산에서 논의가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충청권 표심이 대선 승패를 가름하는 분수령인 상황에서 대선 승리의 핵심 전략으로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밀어붙인 겁니다.
중간에 흐지부지된 행정구역 개편도 있었습니다. 2005년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가장 큰 행정구역인 ‘도(道)’를 폐지하고 전국을 1개 특별시, 인구 100만 명 이하의 광역시 60여 개로 재편하자고 제안합니다. 이에 2009년 국회에 관련 특별위원회가 구성됐고, 2010년엔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까지 제정됩니다. 그러나 행정구역을 광역화하는 세계적 흐름에서 왜 한국은 거꾸로 가느냐는 반론이 적지 않았습니다. 또 선거구(제)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여야 정치권의 협상은 물꼬를 트지 못했습니다. 특별법도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으로 이름이 바뀌며 ‘개편’이란 용어가 빠지고, 결국 동력을 잃고 맙니다.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지금과 비슷한 ‘대수도론’, 즉 ‘큰 서울론’이 당시 한나라당 예비 후보 간 쟁점으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정당 간 의석 싸움으로 전락
외국에서도 행정구역 개편이나 수도이전 문제는 항상 핫이슈였습니다. 미국의 51번째 주(州) 승격 문제가 오래된 예인데요,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와 워싱턴 D.C.의 주 승격을 둘러싼 논란이 컸습니다. 민주당은 자신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들 지역을 주로 승격시켜 상원의원 의석 2개를 늘리려는 겁니다. 푸에르토리코 주민들도 여러 번의 주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졌고, 연방의회에 주 승격을 정식 요구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공화당 입장에선 관련 법안이 의회에 올라오면 필리버스터링(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으로 무산시키려 합니다. 그 대신 자신들의 지지표가 많은 시골 지역을 다른 주로 분리해 상·하원 자리를 더 가져가려 하지요. 주의 권역이나 경제 규모가 하나의 국가 수준인 캘리포니아주도 쪼개자는 논의가 빈번하게 이뤄지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추진하던 행정수도 이전도 국토균형개발을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곳은 말레이시아의 푸트라자야 정도에 불과합니다. 현재 독일의 수도는 베를린인데요, 이는 옛 동독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문제는 정부 부처 일부가 베를린에서 약 600km 떨어진 옛 서독의 수도 본 지역에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지역 간 이해 상충을 정치적 타협으로 풀지 못해 행정 비효율이 막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 전국 단위의 행정구역 개편이 필요한 이유를 토론해보자.
3. 행정구역 개편이 정치적 논란을 부르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선거 공약이 경제 어렵게 하면 곤란하죠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통합되는 도시는 사실상 ‘소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래서 지역 주민 간 이해 절충이 명분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약 50년을 끌어온 일본의 수도 이전 논의가 2000년대 초반 중단된 것도 이런 국민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는 수도 도쿄의 과밀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이전 후보지 선정 기준까지 짰지만, 결국 포기하고 맙니다. 그럼에도 선거철만 다가오면 어김없이 행정구역 개편 이슈는 불쑥불쑥 제기되고 있는데요, 왜 그럴까요.
‘확률적 투표’가 선거공약 설명
정당이나 선거 후보자가 정책 경쟁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정책을 제안하면 어느 정도 득표를 할 수 있을지 판단이 설까요? 미국 경제학자 해럴드 호텔링이 1929년 제기한 ‘중위투표자 이론’에 따르면 다수결 투표의 경우 이념이나 성향의 양 극단을 배제하고 중간(중도)에 위치한 유권자가 선호할 만한 정책을 내는 것이 가장 유리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선 유권자들의 지지가 확정적이지 않은 데다, 후보자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도 많아 투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정책’과 ‘투표 결과’의 관계를 확률적으로 설명해주는 모델이 주목을 받았는데요, 바로 미국 경제학자 피터 코흘린 등이 1980년대에 주창한 ‘확률적 투표 이론’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후보자나 정당은 투표 의사를 정하지 못한 부동표가 많은 지역에 더 많은 공공재를 공급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거 승리 확률을 높이기 위해 고정표보다 부동표를 공략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지역의 이익을 약속한다는 겁니다.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시도, 문재인 정부의 가덕신공항 재추진, 그리고 이번 메가시티 서울 구상과 같은 공공재 공급이 왜 선거를 목전에 두고 나오는지 확률적 투표 이론이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정치적 경기순환의 위험성
수도이전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이 치밀한 분석과 경제성 평가를 통해 이뤄지지 않는다면 큰 문제입니다. 선거 승리를 위한 정치 행위로 변질된 정책 경쟁이 경제 상황을 변동시킬 위험도 있습니다.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미국의 윌리엄 노드하우스가 1975년 주장한 ‘정치적 경기순환(Political Business Cycle)’ 가설은 그런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가설은 경기변동 요인을 경제적 요소에서만 찾는 전통적 경제이론을 확장시킵니다. 정치 환경, 특히 선거 변수들이 경기변동에 미치는 영향을 들여다보지 않고는 경제를 얘기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정부와 여당은 선거 전에는 경기부양책을 펴다가 선거 이후엔 물가상승 등을 이유로 긴축의 고삐를 죄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념적으로 좌파 정부는 확장적 경제운용을, 우파 정부는 긴축정책을 펴는 것도 그렇습니다. 선거공약이 시장경제 기능을 왜곡시키고 경제가 균형성장을 하는 데 혼란을 부를 수 있습니다.
‘공유지의 비극’ 초래할 수도
행정구역 개편은 선거구 개편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정치적 타협과 결과물 산출에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행정구역 개편 주장은 그래서 선거용으로 의심받습니다. 행정구역이나 선거구 개편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어야 하는데, 정당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재단하려 한다면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 현실화할 수도 있습니다.
공유지의 비극은 미국 생물학자 개릿 하딘이 1968년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논문에 처음 나오는 개념인데요, 주인 없는 공동 방목장(commons)에는 농부들이 소를 더 많이 몰고 와 풀을 뜯게 하기 때문에 결국 황폐화한다는 비유를 듭니다. 희귀한 공유자원은 강행 규칙이 없이는 사람들의 무임승차 욕구 때문에 파괴되고 만다는 사실을 경고한 것입니다. 행정구역이나 선거구 제도는 국가와 지역공동체의 번영을 위한 일종의 공유자원인데, 정당들이 정치적 욕심만 앞세우다 비효율과 갈등의 온상으로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2. 정치적 경기순환의 위험성이 무엇인지 토론해보자.
3. 공유지의 비극이 발생하는 또 다른 사례를 찾아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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