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문은행 대출금리에 비상식적인 ‘이상’이 생겨 이용자 사이에 논란이 빚어졌다. 카카오뱅크·케이뱅크 같은 한국의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신용대출 금리를 책정하면서 신용등급이 낮은 중·저신용자보다 신용 상태가 좋은 고신용자에게 더 높은 금리를 적용한 것이다. 통상 금융시장에서는 신용도가 높을수록 신용대출 금리가 낮아진다. 금융거래의 기본 논리와 정반대 현상이 이른바 제1금융권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것은 정부가 금리라는 돈 시장의 가격구조에 개입하면서 비롯됐다. 나름대로 명분은 있다. 신용 상태가 좋지 못한 저신용자에게도 자금 대출이 이뤄지도록 한 것이 요인이다. 하지만 금리역전은 오래 신용을 쌓아온 우량 고객에 대한 역차별이다. 신용여건에 반비례하는 금리 책정, 용인될 수 있나.
당시 문 전 대통령은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신용이 낮은 사람은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국무회의라는 행정부에서 제일 중요한 자리에서 나온 얘기다. 대통령의 발언은 고신용자가 높은 대출이자를 부담하고, 저신용자는 보다 싸게 은행 돈을 빌릴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지면서 금융시장을 한바탕 흔들었다. 사회적약자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신용과 대출의 근본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면서 파장이 일었다. “기본이 안 된 얘기”라는 비판이 커지면서 청와대는 곧 “안타깝다고 한 말이 잘못 전달됐다”라며 해명에 나섰고, 사태는 해프닝처럼 끝났다.
하지만 지금 인터넷전문은행에서 빚어지는 금리역전 현상은 그때와 다르다. 신용대출에 대한 금융감독당국의 점검 결과 고신용자로 쏠림이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감독당국은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비중을 올리라는 요구를 하게 됐고, 카카오뱅크는 2023년 말까지 그 비중을 30%, 케이뱅크는 32%로 끌어올리겠다고 응답한 것이다. 금융 취약층 보호·지원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 비율을 맞추려다 보니 부득불 고신용자에 대한 대출금리(최저 연 5.457%, 11월 초 기준)는 올라갔고, 중·저신용자에 대한 금리(최저 연 4.145%)는 떨어진 것이다. 이렇게라도 해야 금융 약자의 신용대출이 가능해진다. 감내해야 할 작은 부작용이다.
기존에 대형 시중은행도 많은데 인터넷은행을 왜 도입했나. 금융시장에 혁신을 불러일으켜 금융을 선진화하자는 취지였다. 정부는 실제로 그렇게 주장해왔다. 그러면서 기껏 저신용자·고신용자 대출 비율 규제나 하면서 천편일률적 관치금융을 하고 있다. 대출에 대한 이런 규제 자체를 없애야 한다. 대출 비중은 개별 금융사의 독자적 영업 전략이고, 관행일 뿐이다. 그럼에도 대출 비율을 규제한다면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어느 쪽에 얼마나 대출해줬느냐는 ‘잔액’ 기준이 아니라 새로운 기준에 따라 앞으로 이렇게 하자는 식의 ‘신규 취급액’ 기준이 옳다. 그래야 소급 논란도 없고, 대출이자의 역전에 따른 역차별 논란도 줄어든다. 취약계층 지원을 명분으로 금융시장의 작동 원리를 훼손하면 소탐대실, 교각살우의 우를 저지르게 된다. 더 큰 손해다.
서민·취약층을 지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금융 약자 지원은 당당하게 국고로 지원하는 정책자금 확대나 대출 전반에 걸친 규제완화 등이 바람직하다. 은행의 대출 영업은 일종의 비즈니스 전략이고, 사업의 포트폴리오다. ‘감 놔라 배 놔라’ 식으로 직접 관여하는 것이야말로 구시대적 관치금융이다. 이런 개입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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