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5만원 정도면 됐는데, 10만원 넘게 쓰게 생겼어요"
직장인 김모 씨(36)는 최근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요금 인상 예정 소식을 듣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광고 없이 초고화질로 넷플릭스를 볼 수 있는 프리미엄 요금제 가입자다. 본래 프리미엄의 월 요금은 1만7000원이지만 지인 3명과 나눠낸 덕에 실 지출액은 월 4250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요금 인상 정책 적용시 월 요금은 1만원에 가까운 금액으로 뛴다. 김 씨는 "웬 날벼락인지 모르겠다"며 "얼마 전부터 요금이 야금야금 오르더니, 이제는 계정 공유 단속까지 심해지니 너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넷플릭스는 계정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 매달 추가 요금 5000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지난 2일 넷플릭스는 홈페이지를 통해 "계정의 이용 대상은 회원 본인과 함께 거주하는 사람, 즉 한 가구의 구성원"이라며 같은 가구에 속하지 않는 이용자와 계정을 공유하려면 매달 5000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는 새 계정 공유 방침을 공지했다.
기존 많은 회원들은 1개의 계정을 총 4명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프리미엄 서비스를 공유했었다. 하지만 이번 정책으로 거주지가 아닐 경우 계정 공유는 총 3명까지만 인정된다. 이에 따라 프리미엄 1인당 요금은 4000원대에서 9000원대로 무려 2배 이상 뛰게 된다. 프리미엄 기본 요금 1만7000원에 2인 추가금(인당 5000원씩) 1만원이 더해져 한 달에 총 2만7000원의 요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종전까지는 구성원끼리 계정을 공유해도 별다른 제재에 나서지 않으나, 이번에는 IP 주소와 계정 활동 등을 기반으로 '동거 유무'를 단속한다는 방침이다.
넷플릭스는 “회원들이 가입 시 동의한 개인정보 취급 방침에 따라 계정 주인의 IP 주소와 디바이스 ID, 계정 활동 등의 정보를 활용해 이용자가 회원과 같은 가구에 사는지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회원과 같은 가구에 살지 않는 외부 이용자나 외부 기기가 넷플릭스 계정에 접근하면 안내 메시지가 뜰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주기적으로 정해진 곳에서 기기 인증을 해야 하기 때문에 거주지가 다른 경우 현실적으로 계정 공유가 쉽지 않다.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것은 사랑(Love is sharing a password)'이라고 홍보하던 넷플릭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자 소비자들은 반발하는 분위기다. 2017년 3월 당시 넷플릭스는 트위터에 이같은 홍보 문구를 게재할 만큼 계정 공유에 관대한 입장을 내보였다. 현재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부분 가입자들이 계정을 공유하고 있다. 실제로 넷플릭스에 따르면 전 세계 넷플릭스를 구독 중인 2억4700만 가구 중 절반에 가까운 1억 가구 이상이 계정을 공유하고 있다. 앞으로 계속해서 넷플릭스를 보려면 새로 가입해야 하거나, 요금을 2배 이상 내야 한다.
총 4명의 지인과 넷플릭스 계정을 공유 중인 이모 씨(35)는 "7년째 친구들과 넷플릭스 계정을 공유하며 비용을 나눠내고 있는데 이제는 해지를 생각할 만큼 요금이 크게 올랐다"고 한숨을 쉬었다. 또 다른 넷플릭스 가입자 역시 "바빠서 못 볼 때도 많은데 그냥 해지해야겠다"고 말했다. 일부 가입자는 "퇴근 후 넷플릭스 보는 게 유일한 낙이라 절대 끊을 수 없다. 그냥 울며 겨자 먹기로 오른 비용을 낼 수밖에 없다. 비용이 아깝다는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다.
넷플릭스는 계정 공유 유료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넷플릭스가 발표한 3분기 가입자 수는 전 분기 대비 876만명 증가한 2억4715만명으로 집계됐다. 가입자 증가폭은 코로나19 확산이 정점이던 2020년 2분기(1010만명)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늘어난 가입자 덕에 3분기 호실적을 냈다.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8% 증가한 85억4200만달러(약 11조6000억원), 영업이익도 25% 상승한 19억1600만달러(약 2조6000억원)였다. 넷플릭스는 "광고형 요금제와 계정 공유 금지 정책 등의 성과"라고 설명했다.
최근 주요 OTT 업체들이 잇따라 가격을 올리면서 스트리밍과 인플레이션이 결합된 '스트림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지난 1일 디즈니플러스는 국내 구독료를 인상했다. 단일 멤버십(월 9900원)을 스탠다드(월 9900원)와 프리미엄(월 1만3900원)으로 개편했다. 기존 멤버십 서비스(4K 화질, 동시 접속 가능 기기 최대 4대 등)가 프리미엄에 해당하는 만큼, 실질적으로 월 구독료가 4000원 오른 셈이다. 토종 OTT 역시 요금을 인상했다. 티빙은 12월부터 구독료를 올린다. 신규 가입자 기준 베이직 9500원, 스탠다드 1만3500원, 프리미엄 1만7000원으로 각각 1600원, 2600원, 3500원 인상된다. 기존 가입자는 사전 동의를 거치면 내년 5월까지 최대 3개월간 기존 요금으로이용할 수 있다. 이밖에 토종 OTT로는 처음으로 월 5500원 상당의 광고 요금제를 내년 1분기에 도입할 계획이다.
넷플릭스 계정 공유 정책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그나마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비교적 늦게 적용된 편"이라고 밝혔다. 넷플릭스의 계정 공유 유료화 정책은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이후 공개된 주주서한에서 "대대적으로 확대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지난해 3월 칠레, 코스타리카, 페루 등 중남미 3개국에서 유료 정책을 시범 도입한 이후 올해 '안방'인 미국을 포함해 캐나다, 뉴질랜드, 포르투갈 등 국가에도 정식 적용한 바 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