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부산 동래구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3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4강 첫 경기에서 이변이 발생했다. 열세로 평가받던 중국리그 LPL 4번 시드 웨이보 게이밍(WBG)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2번 시드 빌리빌리 게이밍(BLG)을 5세트까지 가는 혈전 끝에 제압했다. 결승에 오른 WBG는 오늘(12일) 열리는 T1과 징동 게이밍(JDG)의 4강 경기 승자와 오는 19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맞붙는다.
해당 시리즈 MVP에는 탑 라이너 ‘더샤이’ 강승록이 꼽혔다.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롤드컵 메타는 바텀 중심으로 흘러갔다. 관계자들도 입을 모아 "바텀이 핵심"이라고 외쳤다. 대부분 팀의 정글러가 바텀 라인의 원거리 딜러와 서포터를 케어하는 동선으로 움직였다. 탑은 소외된 만큼 서로 누가 더 잘 버티냐의 싸움이 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강승록과 BLG의 ‘빈’ 천쩌빈은 이 같은 메타를 부정하듯 게임 내내 서로 영향력을 과시했다. 팽팽한 대결이었으나 더 많은 카드를 선보인 강승록이 판정승을 거뒀다.
강승록은 1세트부터 날뛰었다. 이번 메타 1티어 챔피언으로 꼽히는 럼블을 고른 그는 8킬 1데스 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총 2만3877의 대미지를 뿜어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해당 게임에서 그의 팀 내 대미지 비중은 39.8%에 달했다. 마치 “나한테 럼블을 풀어?”라며 BLG에게 되묻는 것 같은 활약을 펼쳤다. 이후 BLG는 이어진 2세트부터 5세트까지 모두 첫 번째 밴 카드로 럼블을 금지했다.
빈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제는 나의 시대”라고 선언했던 것처럼 본인의 시그니처 챔피언인 잭스를 손에 쥐고 종횡무진 활약했다. 강승록을 상대로 솔로킬을 기록하며 라인전 주도권을 이어갔다. 강승록 역시 정글러 ‘웨이웨이’ 웨이보한과 손잡고 여러 차례 반격을 가했다. 하지만 빈이 강승록을 억제한 사이 아래쪽에서 바루스-애쉬를 고른 BLG의 바텀이 WBG의 바텀 듀오를 상대로 압도적인 격차를 벌리면서 2세트를 가져갔다.
3세트와 4세트에는 강승록의 챔피언 폭을 활용해 웨이보가 변수를 창출했다. 특히 3세트에 나온 탑 그레이브즈는 충격 그 자체였다. 지난해 봄까지 쓰이고 사장됐던 카드를 아트록스에 대한 카운터 픽으로 꺼내 들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강승록은 3세트 탑 그레이브즈로 6킬 0데스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탑을 터트렸다. 빈은 0킬 3데스에 그치며 아트록스로 날개 한 번 제대로 펼쳐보지 못했다. 4세트에도 강승록은 탑 퀸이라는 조커 픽을 기용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탑 잭스와 정글 세주아니로 완벽한 듀오를 구축한 BLG에게 파훼 당하며 0킬 5데스를 기록하며 승부는 2 대 2 동점으로 균형이 맞춰졌다.
마지막 5세트 WBG가 잭스를, BLG가 럼블과 아트록스를 금지한 상태에서 탑 라이너들이 창을 내려놓고 방패를 들었다. 강승록은 그가 LPL 서머와 LPL 롤드컵 선발전에서 총 5번 사용해 전승을 거둔 오른을 택했다. 빈은 LPL 서머와 플레이오프를 통틀어 13번이나 사용해 9승 4패를 기록한 크산테를 골랐다. 탑의 영향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바텀에서 칼리스타-레나타 글라스크 조합을 택한 WBG가 BLG의 케이틀릭-럭스 조합을 상대로 큰 격차를 벌리면서 WBG가 승리를 거뒀다.
강승록은 이번 대회 스위스 스테이지 첫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한국경제신문과 나눈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열리는 롤드컵에 참가할 수 있게 돼 운이 좋은 것 같다”라며 “팀원들과 함께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목표”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결국 그의 운과 겸손은 강승록을 또 한 번 롤드컵 결승에 올려놓았다. 강승록은 지난 2018년에도 한국에서 열린 롤드컵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바 있다. 그가 5년 만에 고향에서 다시 한번 웃을 수 있을지에 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주현 기자 2Ju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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