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13일 14:4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IPO 주관업무를 수행하는 증권사들이 최근 유망 IPO 기업의 주관사 경쟁 과정에서 현재 실적보단 미래 성장성을 염두에 두고 높은 기업가치를 제시했다.
‘대어’를 잡기 위한 전략이지만 현재 실적과 크게 괴리된 기업가치를 제시하며 과열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단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 입맛에 맞춰 높은 기업가치 제시
1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스킨케어 브랜드 '달바'를 운영하는 뷰티 전문기업 비모뉴먼트는 최근 다수 증권사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PT) 진행한 뒤 미래에셋증권을 대표 주관사로 선정했다.이번 주관사 경쟁에 뛰어든 증권사 대부분이 PT에서 1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제시하며 후한 평가를 했다.
작년 비모뉴먼트의 순이익은 126억원이다. 1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는 주가수익비율(PER) 80배 이상을 적용한 수준이다. 뷰티 전문기업 상장사 가운데 비모뉴먼트와 사업 규모가 비슷해 비교 대상으로 언급되는 마녀공장의 현재 PER은 약 30배에 못 미친다.
코로나 펜데믹 시기를 전후로 비모뉴먼트의 실적 증가세가 가팔랐던 만큼 향후 성장성을 염두에 둔 기업가치라는 게 PT에 참여한 증권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최근 주관사를 선정했거나 선정 절차를 진행 중인 기업에서도 주관사 후보가 현재 실적과 괴리가 큰 높은 기업가치를 제시하는 비슷한 상황은 반복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을 대표 주관사로 선정한 롯데글로벌로지스 주관사 경쟁 PT에선 1조6000억원이 기업가치 하한선으로 작용했다. 2017년 이 회사에 투자한 재무적 투자자의 투자 원리금을 감안한 기업가치다. 상반기 롯데글로벌로지스 순이익은 90억원이다.
주관사 선정 절차를 진행 중인 SLL중앙 역시 2021년 프리IPO 당시 인정받은 기업가치 1조2000억원이 주관사로 선정되기 위한 기업가치 하한선으로 여겨졌다. SLL중앙은 상반기에 순손실 36억원을 기록했다.
두 회사 모두 현재 실적으론 달성하기 어려운 기업가치다. 하지만 이들 PT에 참여한 주관사 대부분은 실제로 1조원이 훌쩍 넘는 높은 기업가치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사업종 상장사의 PER보다 5~10배 높은 PER을 적용해야 달성할 수 있다.
대형 증권사의 IPO 실무진은 “현재 기업 상황에서 달성하긴 무리인 기업가치라는 건 알지만, 그 숫자 미만으로 제시하면 해당 기업의 성장성을 낮게 본다는 인식을 피하기 어렵다”며 “당장 상장하는 게 아닌 만큼 미래 성장성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를 담는 청사진(에쿼티 스토리)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기업가치 맞추기 위한 편법 우려
주관사 경쟁 PT에서 현재 실적과 별개로 기업 및 재무적 투자자(FI)가 원하는 기업가치를 먼저 정해놓고, 그를 달성하기 위한 논리를 고민하는 건 비단 최근의 모습은 아니다.다만 저금리로 역대급 유동성 장세가 펼쳐졌던 2020~2021년을 거친 뒤 더욱 만연해졌다는 게 IB 업계의 평가다. 실적보단 성장성을 앞세워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선례가 생기면서 기업은 물론 재무적투자자도 원하는 가격 이하로는 IPO를 진행하지 않겠단 기조가 강해졌다.
IB 업계 관계자는 “주관사 입장에선 울며 겨자 먹기로 공수표라도 제시해야 딜 수임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주관사가 상한선으로 생각해 제시한 기업가치를 기업들은 하한선으로 인식해 실제 상장 과정에서 기업가치 부풀리기가 가속화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주관사를 맡은 후엔 높은 기업가치를 원하는 기업을 만족시키기 위한 각종 편법도 동원된다는 게 IB 업계의 시각이다. 비교기업 선정과정에서 연관성이 낮아도 PER 등 비교지표 배수가 높은 기업을 선정하거나 일회성 이익을 반영해 기업가치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지난 2021년 상장한 게임회사 크래프톤은 월트디즈니, 워너뮤직그룹 등을 비교기업으로 포함한 적이 있다. 이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이들을 제외하고 기업가치를 낮춰 시장의 평가를 받았다.
밀리의서재는 작년 IPO에 나서며 상환전환우선주(RCPS) 보통주 전환에 따른 일회성 금융이익을 기업가치 산정 과정에 반영했다. 결국 철회 이후 재도전 과정에서 이를 제외하고 기업가치를 낮춰 증시에 입성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