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주요 서방 선진국들 가운데 호주와 영국 등 영미권 국가들의 인플레이션이 유독 심한 반면, 한국 일본은 물가 오름폭이 덜한 것으로 분석됐다.
12일(현지시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근원(core)인플레이션, 단위 노동 비용, 인플레이션 분산, 인플레이션 기대치, 구글 검색 행태 등 다섯 가지 지표를 활용해 '인플레이션 고착화'(inflation entrenchment) 점수를 산출해 이 같이 보도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 캐나다 이탈리아 스페인 한국 일본 등 10개국을 대상으로 각 지표별로 국가의 순위를 매긴 다음, 순위를 합산하여 점수를 산출한 결과 1위는 호주, 2위는 영국, 3위는 독일이 차지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9위와 10위에 나란히 올랐다.
인플레이션 고착화가 가장 심한 것으로 평가되는 호주는 1년 전에 비해 소비자물가가 5.1%나 올랐고, 향후 12개월간 물가 상승 폭은 5.2% 가량으로 예상된다. 인건비 상승폭은 지난 1년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7.1%에 달했다. 영국은 지난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2%로 호주보다 높았으나, 향후 상승 전망이 3%로 다소 낮았다. 캐나다는 내년 소비자물가가 5.7%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캐나다인은 인플레이션과 관련된 용어를 가장 자주 검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한 2020~2021년 영미권 국가들의 재정 부양책 규모가 비교 대상 선진국들보다 평균 40% 가량 컸다는 것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게다가 기업을 살리기 위한 조치 등 간접적인 지원보다 가계에 지원금을 주는 등 직접 지원에 더 초점을 맞춘 것도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꼽힌다. 로버트 바로 하버드대 교수와 프란체스코 비앙키 존스 홉킨스대 교수는 논문을 통해 팬데믹 기간 재정 확대와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 사이 연관성을 입증했다.
통화 정책도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미국, 호주, 영국, 캐나다의 중앙은행은 나머지 국가들보다 평균 1%포인트 더 금리를 인하했다. 다른 주요 선진국에 비해 두 배 가량 큰 인하 폭이다. 지난 1년여 동안 영어권 국가에 많은 이민자가 유입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신규 이민자들의 주택 수요가 임대료를 상승시켜 단기적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골드만삭스의 추정에 따르면 현재 호주의 연간 순 이민자 수는 50만 명에 달하며, 이들이 물가를 연간 약 0.5%포인트 상승시키고 있다.
한편 이코노미스트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다른 국가에 비해 급격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 "정책과 행운의 조합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프랑스에 대해선 경제가 더 나은 상황이며 영미권 국가와 아시아 국가의 중간 정도 상황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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