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일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중소벤처기업부 장관실과 인사혁신처장실에 각각 한 통의 등기우편물이 배달됐다. 발신지는 고용노동부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이들 부처가 국가공무원노조 요구에 따라 도입한 단체협약 중 일부 조항이 사용자의 인사권을 침해해 공무원 노조법에 위반된다는 내용이었다. 60일이 지나도 시정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도 담겨 있었다.
이 조항들은 사용자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을 침해한 데다 교섭 대상도 아니어서 공무원 노조법 위반이란 게 고용부 설명이다. 각 부처가 관련 조항을 개정하지 않으면 노조와 노조위원장은 물론 사용자인 장관도 최대 5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각 부처 장관에게 인사 관련 직무를 위임한 인사혁신처장도 사용자로, 시정명령 대상에 포함됐다.
해당 부처엔 비상이 걸렸다. 그나마 노조 측이 곧바로 관련 조항을 고치는 데 동의하면서 문제는 해결됐다. 하지만 부처별로 노조와 단협을 각각 체결하는 만큼 언제, 어느 부처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회사 측은 곧바로 대표이사 명의로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장에게 ‘단협 개정에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보내 해당 조항 삭제를 요구했다. 또 두 차례 사내 홍보지를 통해 “기아에 여론의 질책이 쏟아지고 있다”며 시정 필요성을 호소했다. 하지만 노조가 미온적 반응을 보이면서 대표가 조사받게 됐다.
회사 측은 지난달 임금 협상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임금 인상률과 성과급을 약속하고 난 뒤에야 노조와 고용세습 조항 폐지에 합의할 수 있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현행 법규에 따르면 법에 위반되는 단협이어도 노조 동의 없이 변경할 수 없다”며 “노조의 ‘물귀신’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런 행위가 적발돼도 현행 노조법에 따르면 사업주만 처벌될 뿐 지원을 강요한 노조는 처벌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노조가 법적 한도를 넘는 타임오프를 요구해도 회사가 거절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기업이 돈을 주고 사업장의 평화를 사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사용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규정을 삭제하기 어렵다면 사업주에게 금전 지급 등을 강요한 노조도 사용자와 동등하게 처벌해야 형평에 맞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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