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1일 일해도 연차수당은 '2년치'…법 악용 '꼼수 직원'만 늘렸다

입력 2023-11-15 18:15   수정 2023-11-23 15:50


“1년 하고 겨우 하루 더 다니고 그만두면서 연차수당 26일치를 달라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서울 강서구에서 법무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A씨의 하소연이다. 지난해 9월 채용돼 행정사무 일을 보던 직원이 근무한 지 366일째(1년+하루) 되는 날 개인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면서 퇴직금과 함께 그동안 안 쓴 연차휴가에 대해 수당 지급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원래 법정 휴가는 1년 차에 11일, 2년 차에 15일이다. 하지만 이 직원은 366일만 회사를 다니고도 2년치(26일)에 해당하는 연차수당을 달라고 한 것이다. A씨는 황당하다는 생각에 노무사에게 물었지만 “현행법이 그렇다”는 답을 들어야 했다.

자영업자 카페 등 인터넷 포털 커뮤니티에는 이와 비슷한 사례가 수시로 올라온다.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안 쓴 연차휴가 수당을 최대한 받아내는 법을 공유하고 사업주는 자신이 겪은 일을 언급하며 분통을 터뜨린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문제의 발단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11월 근로기준법 개정이었다. 당시 여야는 근로기준법 중 ‘최초 1년간 근로 중 휴가를 쓴 경우 2년 차에는 15일에서 1년 차에 쓴 휴가 일수를 뺀 만큼만 휴가를 보장한다’는 조항(60조 3항)을 삭제했다. 저연차 근로자의 휴식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였다. 즉, 기존에는 1년 차에 휴가를 5일 썼다면 2년 차에는 연차수당을 10일만(총 15일의 휴가권-5일) 청구할 수 있었는데 이 조항이 삭제돼 근로자가 청구할 수 있는 휴가는 1년 차에 11일, 2년 차에는 며칠을 근무하든 15일이 됐다. 당시 정부는 한술 더 떠 계약기간이 1년인 근로자도 연차수당 청구권이 총 26일이란 행정해석을 내놨다. ‘2년 차에 예정돼 있는 휴가 15일은 1년 근무의 대가’라는 논리에서였다.

자영업자와 영세 중소기업 사업주들은 강력 반발했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사용자가 휴가 사용을 독려한 경우 1년 차 휴가에 대한 수당 청구권은 사라진다(연차휴가촉진제)’는 내용을 추가해 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계약기간 1년짜리 근로자가 청구할 수 있는 연차수당은 최대 15일로 제한됐다.

이후 대법원은 2021년 10월 ‘2년 차에 단 하루도 근무하지 않았다면 11일(1년 차 법정 휴가일수)의 수당 청구권만 있다’는 판결을 내놨다. 기존 정부 행정해석보다는 상식에 가까운 판결이었다. 그럼에도 2년 차에 단 하루라도 근무하면 26일의 연차수당 청구권이 생긴다는 건 전혀 바뀌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실업급여와 맞물려 고용시장에서 단기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정부 때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라 일을 해 버는 돈보다 실업급여가 더 많은 경우가 생겼다. 대기업 채용이 얼어붙고 중소기업은 구인난을 겪는 상황이다. 근로자로서는 적당한 곳에 취업해 1년 남짓 일하면 퇴직금과 최대 26일의 연차수당은 물론 4개월 이상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단기 일자리를 찾는 사례가 적지 않다. 또 사업주 입장에선 연차수당이나 퇴직금을 안 줘도 되는 1년 미만 근로계약을 선호하는 유인이 된다.

임영태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연차수당 문제는 당초 휴식권 보장이 취지였으나 최근 금전 보상 측면이 강조되면서 영세 사업주들의 인건비 부담만 크게 늘었다”며 “국회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근로기준법 재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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