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일까 때우기일까…'양도세 완화' 카드에 시장 떠들썩 [H리포트]

입력 2023-11-16 12:00   수정 2023-11-16 16:18

"주식 양도소득세가 완화될 가능성은 51%입니다. 대놓고 반대할 사람이 많지 않거든요."

최근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가 기자에게 한 말입니다. "누군가를 51% 믿는다는 것은 100% 믿는다는 것이고 49% 믿는다는 건 하나도 안 믿는다는 뜻"이라는 영화 '넘버3' 속 배우 한석규의 대사를 응용한 겁니다. 이렇게 애매한 화법으로 27년 전 영화대사까지 끌어다가 설명하는 이유는 "대세는 그래도 간다"여서 입니다. 금융위가 이렇다할 공식 입장을 내놓진 않았지만, 대주주 양도세 기준 완화를 기정사실로 못 박고 있다고 뜻이기도 합니다.

주식 양도세는 소득세법 개정이 필요 없는 '시행령' 개정 사안입니다. 때문에 야당인 민주당이 반대의사를 보이고는 있지만 실상 야당의 협조 없이 정부가 강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정 간 양도세를 완화하기로 최종 협의만 이룬다면 이를 추진할 유인이 큽니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한 줄 공약으로 '주식 양도세 폐지'를 내걸었던 바 있습니다. 폐지는 아니더라도 완화를 해서 공약에 가깝게 가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대주주와 일반 투자자 모두 반기는 사안이란 점도 양도세 완화 가능성을 높입니다.

하지만 시장 참여자들이 반긴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정책이란 전망은 금물입니다. 일부에서는 증권거래세를 없애거나 내리고 양도 소득세를 강화하는 글로벌 조세트렌드를 거스르는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주식 양도세 완화도 검토…당정 총선 전 잇단 '초강수'
대주주 양도세란 말 뜻 그대로 주식을 대량으로 가진 대주주에 부과하는 세금입니다. 소득세법에선 '상장 주식을 종목당 10억원 이상 보유'하거나 '특정 종목 지분율이 1~4%'인 경우 대주주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주식을 팔아 남긴 양도차익에 대해 20%(3억원 초과는 25%)의 세금을 매기는 겁니다.

당정은 '10억원 이상 개별종목 주식 보유자'라는 기존 과세대상을 '50억원 이상'으로 좁힐 생각입니다. 시민단체 나라살림연구소가 작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개인투자자 중 상장주식 양도세 과세대상은 0.3% 수준입니다. 기준 완화 땐 이 비율이 거의 '제로'에 수렴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주주 입장에선 당연히 반길 소식인 겁니다.

여기에 개인 투자자들 또한 "대환영"이라며 반기고 있습니다. 연말마다 큰손들이 대주주 지정 회피를 위해 주식을 몰아서 팔아치우다보니 일반 투자자들이 받는 수급 충격이 컸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작년의 경우 주식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하락장이었음에도 대주주 확정일 전날인 12월 27일 하루 동안 양대 시장에서 약 1조5370억원의 개인 순매도가 나왔습니다. 2021년에는 하루 사이 무려 3조1587억원이 빠져나가면서 주주들에게 충격을 안겼죠.

올해 대주주 양도세 과세 기준일은 12월 27일입니다. 완화된 기준이 적용된다면 수급 부담이 크게 줄어들 전망입니다. 또 국내 여러 논문들이 대주주 양도세 강화가 주가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말해왔던 만큼 주가가 방어되는 측면도 있겠습니다. 2017년 유지선 서울시립대 교수 등은 논문 '소득세법상 상장법인 대주주 요건의 개정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대주주 요건 강화가 주가하락의 한 원인이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박영규 가톨릭대 교수도 2020년 발표한 논문 '주식 양도세 변천과 주식거래에 대한 영향'에서 "양도소득세 대상이 많아질수록 거래회전율이 정체되는 등 주식 거래엔 악영향을 줄 개연성이 높다"고 짚었습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주식시장은 큰 손과 개인 모두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지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다. 미국과 독일 등 자본시장 선진국 따라서 주식 양도세를 강화했다간 어린아이 몸에 성인 옷을 입히는 격"이라며 "불필요한 변동성도 확 줄기 때문에 개인들 입장에서도 환영한다"고 밝혔습니다.

김용민 진금융조세연구원 대표(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도 기자에 "한국 증시는 다른 나라 대비 고금리 등의 타격을 크게 받았다. 지금처럼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의식이 큰 상황에서 선진국 표준보다 중요한 게 투자자들 달래기"라면서 "연말 수급 교란을 최소화해 일단 시장부터 살리고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자 감세 웬말" 비판…정책 과도기 '역행정책' 지적
하지만 우려의 시선도 있습니다. 어찌보면 공매도 금지 때와 데자뷔같은 논리입니다. 공매도 금지가 선진국 지수 편입 흐름을 거스른다는 비판을 받았듯 이번 양도세 완화도 선진국 조세트렌드와는 다른 행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주식거래 관련해선 '증권거래세는 내리거나 폐지하고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는' 기조가 번지고 있습니다. 거래세를 낮춰 주식거래를 활성화하되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대원칙 하에 돈을 버는 이에겐 세금을 물리겠다는 겁니다. 증권거래세와 양도세를 함께 부과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과 일본, 독일 등은 양도세만 부과하고 있습니다.

과거 추이를 살펴보면 유가증권시장 대주주 기준은 2000년 도입 당시 100억원에서 2013년 50억원으로 조정됐고 2016년 25억원, 2018년 15억원을 거쳐 10억원까지 하향됐습니다. 때문에 총선을 앞두고 그간의 '부자 증세' 기조를 거스르는 방침을 내놓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불렀습니다. 물론 이 경우 절대다수의 표심을 잡기 위해 '부자 감세'의 측면보다는 '개인 투자자의 수급 부담 완화'를 겨냥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다만 야당에선 '부자 감세' 지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올해 59조원 규모 세수 결손이 예상되는 가운데 감세가 웬말이냐는 겁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선거용 날림 정책이란 비판과 함께 최악의 세수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금융투자소득세 시행까지 약 1년 남은 가운데 금투세 기조와 반대되는 기조란 점에서 투자자들 혼란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정책 변화의 과도기에는 속도 조절이 관건입니다. 금투세의 골자는 대주주뿐 아니라 소액주주 전체에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을 물리는 것인데, 양도세 완화가 아닌 강화가 더 시의성 있는 정책이란 얘기입니다. 최원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예정대로라면) 2025년 1월 1일부터 금투세가 적용돼야 하는데 제도의 점진적 정착을 위해선 투자자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오히려 강화하거나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2년짜리 정책' 그 이상 될수도…"금투세와 함께 논의해야"
때문에 대부분 전문가들은 시간이 촉박하더라도 양도세와 금투세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금투세가 이견이 심한 사안 중 하나인 만큼 또 유예되거나 폐지될 가능성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지금 논의되는 양도세의 방향성이 달라져야 할 수도 있습니다. 금투세 도입 전인 올해와 내년 '2년짜리' 정책이 아닌, 장기적인 정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매번 세제개편이 정치권의 알력 다툼에 휘둘리는 게 안타깝다"면서도 "시장 참여자들 대부분이 원하는 방향인 데다 야당이 막을 수도 없는 사안이어서 양도세 완화는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50억원일지 20억원일지 등 완화 정도의 차이라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단 야당과의 협조 의지를 밝힌 상태입니다. 그는 최근 한 방송에서 "작년 금투세 협의 당시 대주주 10억원에 대한 기준은 내년까지 유지하기로 여야 간 합의가 있었다"면서 "때문에 이번 기준 완화는 야당과 협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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