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연금 개혁에 이어 또 한 번 개혁에 나선다. 프랑스의 고질병으로 꼽히는 '관료주의'를 뿌리 뽑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실업률 증가와 성장률 둔화를 타파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지만 국민들이 '개혁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저성장·실업률 증가에 '특단의 대책'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브루노 르 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15일(현지시간) 50여개 재계 대표단체를 만나 행정 규제 간소화 방안을 논의했다. 재무부는 연말까지 협의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 2월 시행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재무부는 시민들이 관료주의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는 웹사이트도 열었다. 재무부 한 관계자는 "마크롱 대통령의 노력은 협의에서 시작하는 다른 접근 방식을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올해 연금 개혁을 추진하면서 국민적 반대에 부딪힌 적 있는 만큼 국민과의 소통에 더 무게를 두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마크롱 대통령이 또 다른 개혁에 팔을 걷어붙인 것은 프랑스 경제가 저성장과 실업률 증가라는 두 가지 위기 앞에 놓였다는 판단에서다. 프랑스 실업률은 코로나19 위기로 2020년 말 9% 가까이 치솟은 뒤 꾸준히 하락했으나, 올해 1분기(7.1%)와 2분기(7.2%)에 이어 3분기(7.4%)까지 다시 오르고 있다.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마크롱 대통령이 약속한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역시 지난 1분기 전년대비 0%, 2분기 0.5% 성장하는 데 그치며 올해 1%대 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르 메르 장관은 이날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남은 (마크롱 정부의 임기) 4년 동안 지금까지 성과에 안주할 것인지, 아니면 완전 고용과 재산업화, 공공 재정 회복을 목표로 구조 개혁의 변화를 되살릴 것인지 갈림길에 서 있다"고 밝혔다.
연금개혁으로 쌓인 '개혁 피로' 극복할까
관료주의는 오랜 기간 프랑스의 경제 도약을 가로막은 대표 병폐로 꼽힌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많고 복잡해서 은행 계좌 하나를 개설하는데도 한 달 이상 걸릴 정도다. 최근 프랑스 상원에서는 관료주의로 인한 비용이 연간 프랑스 경제 생산량의 3%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관료주의를 깨기 위한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2012~2017년)은 2013년 40만개에 달하는 기업·공공기관 규제를 줄이기 위해 이른바 '간소화 충격' 정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 임기 말까지 770개의 핵심 규제를 걷어냈다. 마크롱 대통령은 첫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이러한 간소화 정책을 확대·계승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변수는 올해 연금 개혁 과정에서 쌓인 국민들의 '개혁 피로감'이다. 퐅리티코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4월 42%의 지지율을 얻으며 임기를 시작했으나 올 초 연금개혁 구체안을 공개하고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지지율은 지난 5월 26%까지 떨어졌다. 이후 지난달까지 지지율은 30% 초중반을 오르내리고 있다.
입법 환경도 마크롱 대통령에게 불리하다. 지난해 6월 치러진 국민의회 선거에서 여당인 르네상스(전 전진하는 공화국)는 전체 577석 중 246석(42.6%)을 얻으며 과반을 얻는 데 실패했다. 재무부 관계자는 "이 계획이 반드시 의회에서 법안으로 처리될 필요는 없고 행정부 조례 변경 수준으로도 가능하다"고 설명했지만, 법안 개정 사항이 등장할 경우 여소야대 국면이 발목을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