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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10위권 파나마 코브레 구리광산
환경단체 등 대규모 극렬 시위에 전 정부 계약 무효화 움직임
계약 파기땐 파나마 신용등급 강등, 경제성장률 급락 우려
한국이 이명박 정부 시절 자원외교 정책으로 투자해 최근 수익을 내기 시작한 파나마의 초대형 구리 광산이 공중분해 될 위기를 맞았다. 캐나다 퍼스트퀀텀미네랄(FQM)과 한국 광물자원공사(현 광해광업공단)이 9대1로 지분을 보유한 이 광산은 파나마 국민들의 극렬한 시위에 부딪쳐 인허가권이 무효화될 위기를 맞았다. 코트라에 따르면 파나마산 동광 수입 비중은 한국 전체 수입의 4% 수준에 불과해 원자재 조달 문제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정치적 이유로 지난 10여년간 지지부진했던 한국의 해외 자원개발 역사에 또 한 번의 실패 사례로 기록될 위기다.
파나마 정부는 처음엔 시위 강경 진압을 시도했지만, 충돌 과정에서 사망자까지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에 몰리자 백기를 들었다. 라우렌티노 코르티소 파나마 대통령은 "12월 17일 국민투표로 관련 법령 폐지 여부에 대한 민의를 확인할 것"이라고 물러섰다. 다만 법원은 투표를 불허했다. 파나마 정부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어 시민단체 등에 굴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광산의 운명은 안갯속에 빠졌다.
세계 10위권 구리광산...천신만고 끝 생산 시작했는데
코브레파나마는 매장량이 30억t에 달하는 파나마 최대이자 세계 10위권 구리 광산이다. 1997년 첫 인허가가 이뤄졌고 한국의 LS니꼬동제련과 광물자원공사가 2009년 각각 10% 지분을 인수다. 당시 정부 차원의 자원외교 드라이브에 힘입어 적극적으로 사업에 진출했다. 2013년 FQM이 나머지 광산 지분 보유기업을 인수하면서 현재 사업 구도가 형성됐다. 사업이 계속 삐걱대는 가운데 LS는 2017년 지분을 FQM에 넘기고 빠졌으나, FQM과 광물자원공사는 사업을 이어갔다. FQM과 한국은 총 110억달러(약 14조원) 가량을 들여 천신만고 끝에 노천광산 2곳과 가공 공장, 150㎿ 발전소 2기에 항구까지 건설을 마치고 2019년 상업생산에 들어갔다. 광업 단지의 가동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연간 최대 8500만t의 광석을 처리해 금, 은, 몰리브덴과 함께 연 35만t 이상의 구리를 생산할 것으로 기대됐다. 실제 지난해 연간 구리 35만438t, 금 13만9751온스, 은 281만3129온스를 생산해내는 성과를 냈다. 구리의 경우 전세계 생산량에 1%에 달하는 규모다. 구리는 단번에 파나마 최대 수출 품목으로 떠올랐고, 한국이 전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양의 구리를 수입해왔다.
그러나 이 사업은 폭탄을 안고 있었다. 1997년 이뤄진 채굴 인허가 계약에 대해 파나마 시민단체가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해왔다는 점 때문이다. 2021년 파나마 정부도 정식으로 재협상을 요구했고 FQM은 파나마 정부와 2년 간의 협상 끝에 매출총이익의 최대 16%의 로열티를 지급하는 등 종전 계약보다 10배 많은 최소 3억7500만달러를 매년 내기로 했다. 별도 법인세 25%도 부담하기로 했다. 합의에 따라 파나마 의회는 FQM의 코브레 파나마 광산 채굴사업권을 20년 간 연장하는 안건을 지난달 20일 승인했다. 이후에도 광산을 20년간 추가로 운영할 수 있도록 인허가를 연장받을 수 있는 조항도 포함됐다.
그런데 인허가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파나마 건설노조와 교사협회, 환경단체, 지역 주민단체 등을 중심 벌어진 시위를 정부가 강경진압하자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져나갔다. 정부는 시위 진압에 군 병력까지 동원했고, 시위대와의 충돌 과정에서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당초 파나마 정부와 FQM이 시위의 주요 타겟이었으나 한국도 지분을 보유한 사실이 SNS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주파나마 한국대사관이 교민과 관광객 등에게 안전에 유의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시위는 왜 일어났나
시위의 직접적인 요인은 파나마 의회가 산업부 장관이 지난달 16일 제출한 광산개발 계약 승인법을 단 5일 만에 통과시킨 의사결정 과정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파나마 국민들은 계약을 정부와 의회가 성급하게 연장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파나마 헌법은 모든 광물 매장지를 국가 소유로 선언하고 있다. 환경단체 등 시민단체들은 여러 이유로 오래전부터 이 사업에 반대해왔다. 이들은 공개 경쟁입찰이 없이 이뤄진 1997년 최초 인허가는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2009년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대법원까지 간 끝에 2017년 환경단체의 승리로 끝났다. 파나마 정부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로열티를 인상하라며 FQM에 재협상을 요구한 것도 이 판결이 근거가 됐다. 이미 구리 생산은 시작된 가운데 재협상이 난항을 겪자 파나마 정부는 지난해 구리 수출항의 선적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FQM이 협상 끝에 정부·의회와는 합의에 성공했다. 반면 오랜 시간 동안 적지 않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들을 납득시키는 데 실패한 것이 패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FQM은 구리광석 처리 공장에 지역주민 4500명을 채용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4만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파나마 경제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은 주민 고용이 생각보다 적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광산 개발로 인한 폐수가 주변 수자원 및 토양 오염을 초래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황금알 낳는 거위 배 가르나...최악 시나리오 유력
광산은 사실상 조업을 중단한 상태다. 시위대가 광산 단지의 항구를 막아 발전소를 가동할 연료를 반입하는 데 차질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FQM와 한국의 입장에선 최악에 가까운 시나리오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나온다. 파나마는 2024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정부가 국민들 편을 들 수 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파나마 의회 에디슨 브로스(Edison Broce) 무소속 의원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노천 광산은 파나마 환경에 해를 끼치고 있고 관광 산업을 활성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채굴 비용이 이익보다 크기 때문에 광산을 점진적으로 완전히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토 증시에서 FQM주가는 한 달만에 31캐나다 달러에서 15캐나다 달러(17일 주가 기준)로 반토막이 났다. 시가총액으로는 100억캐나다달러(미화 73억달러·약 9조4000억원) 가량이 증발했다. 로살바 오브라이언 로이터통신 에디터는 칼럼에서 "현재 양측은 계약에 대한 여러 가지 법적 문제에 대해 국가 최고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고 계약이 무효화될 가능성이 뚜렷하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파나마가 광산을 폐광하지는 않더라도 현재 사업권자들이 다른 곳에 지분을 넘기도록 강제하거나, 광산을 국유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FQM과의 계약이 파기되면 파나마 경제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파나마에서 몇 년 사이에 이 광산이 파나마 운하 다음으로 큰 수입원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파나마가 과거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과 마찬가지로 자산 몰수에 준하는 국유화 또는 폐광 조치 등을 감행할 경우 국제 소송과 이에 따른 경제 보복·제재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경우 국가 신용등급도 바닥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광산이 이대로 가동을 멈추면 기존 6%에 달했던 파나마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예상치가 1%대로 하향 조정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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