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얼마 전 영화관에서 봤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낸 영화라고 하지만 내용이 쉬이 와닿진 않았다. 뛰어난 영상미와 군데군데 보이는 위트는 즐거웠으나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감독이 모티브를 얻었다는 요시노 겐자부로의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어본 이유다. 두 작품은 일본어로는 같은 제목이지만, 한국에서 출간된 소설 제목엔 조사 ‘은’(일본어 は)이 빠져 있다.
내면의 선과 악을 지닌 인간
책 속의 주인공 혼다 준이치는 ‘코페르’라는 별명을 가진 열다섯 살 소년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외삼촌을 통해 세상을 배워 나간다. 어느 날 외삼촌과 함께 백화점 옥상에서 도쿄 시내를 바라보며 수많은 인파가 지나는 모습에 마치 ‘물 분자’ 같다고 느낀다. 세상의 넓이를 알아가면서 그 안의 수많은 사물과 사람의 관계를 이해해 나간다. 생각이 깊은 아이지만, 친구들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비겁한 행동을 한 자신에게 괴로워하는 장면도 나온다.
‘선(善)과 악(惡)’. 두 단어는 소설과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요시노 작가는 책을 통해 인본주의 정신을 심어주고, 꿈을 갖고 정의롭게 사는 법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한다. 책이 출간된 때는 1937년이다. 중·일 전쟁 발발에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숭배되고, 세계적으로 적잖은 젊은이가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찬양하던 시기다.
미야자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나오는 주인공 마히토 역시 끊임없는 내면의 갈등 속에 세상을 배워나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3년이다. 마히토는 군수업체 사장의 아들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죽음, 친구와의 불화 등으로 힘들어한다. 급우들과 주먹다짐 후 집으로 돌아오던 중 돌로 자신의 머리를 때려 피를 흘리는 장면도 나온다. 내면에 있는 악의의 표현이었다.
실수 극복하며 삶을 찾아야
“소년 안에 담긴 여러 가지,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물론 어디에도 보여줄 수 없는 추한 감정과 갈등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힘차게 넘어갈 수 있을 때, 드디어 세상의 문제들과 마주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마히토와 비슷하게 아버지가 군수공장에서 일했고, 스스로 ‘반전(反戰)’을 말하면서도 많은 영화에 전투 기계의 외적 아름다움과 비행에 대한 동경을 담기도 했다. 영화는 어쩌면 모순적 자기 세계에 대한 고백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도 이따금 내면의 선과 악을 만난다. 모순된 행동도 한다.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서 말했듯 티끌만치도 안 되는 존재이지만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지기도 한다. 때로는 이겨내기 힘들 정도로 괴롭고 슬픈 일도 겪는다. 그럼에도 실수를 극복하고 주어진 삶을 긍정하며 묵묵히 살아가라고 소설과 영화는 말하는 듯했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질문이 아니라 살아가라는 당위론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