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한국에선 지금도 정부가 툭 하면 가격에 개입한다. 최근 우유, 빵, 아이스크림 등 28개 품목에 전담 공무원을 배정해 매일 가격을 체크하도록 했다. 해외 토픽에나 나올 법한 ‘빵 사무관’ ‘우유 사무관’을 둔 것이다. 각 부처 차관을 물가안정 책임관으로 지정해 부처별로 소관 품목을 책임 관리하도록 했다. 이명박(MB) 정부 때 국민 생활에 밀접한 52개 품목에 담당 공무원을 붙여 가격을 통제했던 MB식 물가관리의 시즌2다. 요즘은 슈링크플레이션으로 불리는 편법 가격 인상을 정조준하고 있다. 가격을 놔둔 채 용량을 줄이는 행위를 막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물가 잡기에 올인하는 것은 안정되는 듯하던 물가가 다시 불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8% 오르며 7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상승했다. 정부가 팔짱만 끼고 있기는 어려운 게 한국 정서다. 물론 슈링크플레이션은 기업이 소비자의 불신을 자초할 수 있는 꼼수다. 용량을 줄였다면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투명하게 표시해야 한다는 정부 지적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슈링크플레이션은 물가 통제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인건비와 원자재값이 오르는데 정부가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고 하니 기업들이 용량을 줄이는 식으로 피해 가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슈링크플레이션을 부추겨놓고 다시 그걸 잡겠다고 나서는 아이러니라고 볼 수 있다.
닉슨의 실패가 보여주듯 물가 통제는 성공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부작용이 크다. 당장은 기업들이 정부 눈치를 보느라 가격 인상을 자제할지 몰라도 인건비와 원재료비가 오르면 언젠가는 가격을 올리면서 ‘지각 인상’이 나타날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라면 그 시점은 내년 총선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이 정부 통제가 덜한 품목을 중심으로 가격을 올리는 ‘풍선 효과’도 우려된다. 이명박 정부의 물가 통제도 그래서 실패했다.
정부 통제로 물가가 급하게 오르지 않는 대신 물가가 느리게 떨어지고 고물가가 길어지는 ‘끈적한(sticky)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도 있다.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작년 6월 9.1%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달 3.2%로 빠르게 떨어진 것과 달리 한국은 지난해 7월 6.3%에서 지난달 3.8%로 하락 속도가 더딘 것은 그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설령 정부의 물가 통제가 성공해도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긴다. 전기요금을 억제하니 한국전력이 부실 덩어리로 전락하고, 대학 등록금을 15년간 묶었더니 대학 경쟁력이 떨어지는 식이다.
경제에 공짜는 없다. 인위적 물가 통제는 하지 않는 게 맞다. 통화 긴축을 유지하고, 방만한 재정지출을 억제하고,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게 정부가 물가를 잡는 정공법이다. 시장과 자유를 중시하는 정부라면 더더욱 그렇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