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 불안감 지속적으로 낮출 수 있어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국내 전기차 충전 사업자는 모두 109곳이다. 정부(환경부), 대기업, 중소기업, 소기업 등이 저마다 성장 가능성을 보고 전력 유통 사업에 뛰어든 셈이다. 물론 환경부는 초창기 공공의 관점에서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치중했고 조만간 충전 사업을 민간에게 넘길 예정이다.
민간 충전 사업의 구조는 단순하다. 사업자 스스로 장소를 선정해 충전기를 설치하는데 가급적 많은 전기차가 충전기를 이용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한다. 그래서 자동차의 통행량이 많은 지역을 선호하지만 이 경우 충전기 설치 부지의 임대 비용이 높다. 그럼에도 설치하면 당연히 최단 기간에 투자비를 회수하려는 욕망이 강하게 분출하고 충전 요금을 비싸게 책정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충전기를 자주 이용하도록 회원가입자와 비가입자의 요금 차등을 둔다. 따라서 일부 전기차 이용자는 회원카드만 10개 이상을 보유하기도 한다. 정부가 사업자 간 회원카드 사용 호환을 많이 유도했지만 여전히 통합은 쉽지 않다. 민간 영역에선 사업자 간 이용자 유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탓이다.
그러자 일부에선 버스와 지하철의 사례처럼 지역별로 충전 사업자를 선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이미 사업을 민간에 개방했고 사업자마다 전기차 이용자 유치 경쟁을 벌이는 마당에 이를 지역별로 제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경쟁 제한이 어렵다면 충전기 설치 기준을 강화하자는 제안도 쏟아진다. 단적으로 완속 충전기와 급속 충전기 설치 비중을 의무화하는 방안이다. 급속 충전기 비중이 10% 가량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사업자격 요건에 급속 비중을 20%로 정하자는 목소리다. 충전 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충전기 당 이용 가능한 차가 많아질 수 있어서다. 물론 이때는 민간 사업자의 투자가 뒤따를 수밖에 없는 만큼 충전 사업은 결국 대기업 영역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부가 짜낸 묘수가 값 비싼 급속 충전기 설치 때 보조금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2025년부터 급속 충전기 중심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현재 지급되는 보조금 50%를 더 늘리는 방안이다. 그래야 민간 사업자의 선제적 투자 비용 부담이 감소해 급속 충전기 확대가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가 지난해 말 전기차 보유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이용자들은 충전소 부족과 충전 시간의 단점을 불편함의 우선 순위로 꼽았다. 따라서 해결책은 급속 충전기의 빠른 확산이다. 따라서 환경부의 급속 충전기 설치비 지원 확대는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조치다.
최근 영국을 비롯한 유럽 내 국가들이 전기차 확산을 위해 구매 보조금 대신 충전 인프라 확산을 결정한 것도 결국은 한정된 예산 내에서 이용자 불편함을 최대한 줄이는 고육지책의 결과다. 완속 충전은 민간 사업의 영역에 맡겨두되 예산은 급속 충전에만 쏟아붓는 게 전기차 확산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요즘 전기차 판매가 주춤하다는 얘기가 많이 쏟아진다. 그러나 글로벌로 시선을 확대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해마다 평균 40% 이상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게다가 제조사들이 가격과 비례해 다양한 주행거리의 전기차를 쏟아내면서 주행거리에 대한 불안감도 경험을 통해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다. 제품의 기능적 용도를 수용하면서 나타나는 결과다. 대표적으로 기아 레이 EV는 주행거리가 짧지만 가격도 저렴하다. 반면 비교적 비싼 가격에 주행거리가 500㎞에 달하는 제품도 즐비하다. 단순히 1회 충전 주행거리가 아니라 사용 용도가 명확하다면 짧은 주행거리 전기차도 통하는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무엇보다 우선할 것은 급속 충전기의 확대 정책이다. 10% 가량에 머물러 있는 급속 충전기를 얼마나 빨리 확산하느냐가 곧 전기차의 성장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