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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 요건을 완화할 방침이다. 새로 도입할 규칙에 따라 가스 배출량을 측정하기 까다로워서다. 공시로 인한 효익보다 비용만 증가한다는 비판도 거센 상황이다.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SEC가 기업 공급망에서 배출되는 온실 가스양을 공시하는 요건을 일부 완화할 방침이라고 20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특히 기업의 가치사슬(밸류체인) 내부에서 생성되는 모든 온실가스를 측정하는 '스코프 3(Scope 3)' 배출 공시 규제를 축소할 계획이다.
지난해 3월 SEC는 2024년부터 스코프 3 배출량 데이터 수집을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규정 초안을 발표했다. 뒤이어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 산하 ‘국제지속가능성 기준위원회(ISSB)’는 지난해 10월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스코프 3 공시 의무화를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유럽연합(EU)은 이에 따라 2024년부터 스코프 3 공시를 의무화할 계획이다. SEC는 아직 의무화하지 않았지만, 최종안을 올해 안에 마련할 예정이다.
스코프 3은 기업 공시에서 가장 까다로운 영역으로 평가받는다. 기업이 직접 통제할 수 없는 영역 밖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도 측정해야 해서다. 스코프 3은 총 15개 범주로 나뉜다. 원자재 조달부터 생산 및 운송 과정, 직원의 출·퇴근 시 생성된 가스 등 가치사슬(밸류 체인)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모두 측정해야 한다. 공급업체와 고객이 배출하는 가스양도 고려해야 한다.
측정 범위가 넓은 탓에 기업의 반발이 거셌다. 스코프 3 배출량 공시를 위한 데이터 수집이 어려워서다. 공급사와 고객 등의 배출 정보를 수집할 때 법적 분쟁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도 확산했다. 되레 개인 정보를 침해하는 셈이라는 주장이다.
되레 일부 환경운동단체에선 스코프 3을 철회하고 이미 공시 규정이 마련된 스코프 1과 스코프 2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라는 주장도 나온다. 스코프 1은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양을 뜻하며, 스코프 2는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력과 동력을 감안한 간접배출량을 의미한다.
부작용 때문에 SEC 내부에서도 스코프 3을 철회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 소식통은 로이터에 "SEC와 이해관계자의 공청회에서 스코프 3 공시를 의무화하면 법적 분쟁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는 비판이 거셌다"며 "오히려 스코프 3 공시와 연관된 세부 규칙을 제정할 때마다 소송에 휘말려 SEC의 손발을 묶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지난해 7월 석탄회사가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했다. 당시 석탄 발전 비중이 큰 18개 주 정부와 석탄회사, 화력발전소들이 EPA를 상대로 "EPA가 미국 전체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한할 권리가 없다"고 소를 제기했다. 미 대법원은 6 대 3 다수의견으로 EPA의 패소를 결정했다.
EPA처럼 SEC도 소송이 제기되면 패소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공화당에선 SEC가 스코프 3 공시를 의무화하는 것은 권한 밖의 일이라며 지적하고 있다. 또 이 규정으로 인해 기업 내 비용 부담이 커지고, 투자자들에게 불확실한 정보가 제공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게리 겐슬러 SEC 의장도 스코프 3 의무화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한 SEC 관계자는 로이터에 "겐슬러 의장은 스코프 3 공시 의무화를 철회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겐슬러 의장은 "SEC는 탄소 배출량 공시 규정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며 "스코프 3 공시를 위한 체계가 제대로 개발됐는지 의문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범위가 넓고 측정이 어려워 스코프 3 배출량을 제대로 공시할 기업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스코프 3에 대한 최종 규칙은 아직 제정되지 않은 상태다. 제정에 앞서 여론은 반반으로 엇갈리고 있다. 민주당은 전방위적으로 겐슬러 의장에게 스코프 3을 축소하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다. 공화당 소속 SEC 위원 2명은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미국 상공회의소도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사업"이라며 반대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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