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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사모펀드(PEF)들이 2년 전 상장했지만, 주가가 바닥을 기고 있는 회사들을 싼값에 되사들이고 있다. 공모 시장에서의 수익 창출이 여의치 않자 기업가치를 회복시키기 위해 택한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다.
21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스웨덴 EQT파트너스와 영국 신벤(Cinven), 미국 실버레이크 등 사모펀드들이 최근 몇 달 새 자신이 최대 주주로 있거나 상당량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상장사들을 매수했다.
기업공개(IPO) 시장이 역사적 호황을 누렸던 2021년에 상장된 이들 기업의 주가는 공모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에서 형성돼 있어 매우 저렴하게 팔려나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당시 PEF들은 가치가 총 1400억달러(약 180조원)에 이르는 287개 기업을 공모 시장에 띄웠다.
일례로 EQT는 지난 8월 독일 소프트웨어 기업 수세(Suse)에 30억유로(약 4조2341억원)의 인수 가액을 제안했다. 이 회사가 2021년 4월 프랑크푸르트 증시에 24%의 지분을 상장할 당시 평가액의 절반 정도다. 현재 수세 주가는 공모가(30유로)의 3분의 1 수준(10.8유로·20일 기준)이다. 실적 악화와 이에 따른 유동성 저하가 주요인이었다. EQT는 이미 이 회사 지분 약 79%를 소유하고 있던 상태였다.
9월에는 신벤이 독일에 본사를 둔 글로벌 검진센터 신랩(Synlab)의 발행주식 전량을 재매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신랩 주가 역시 공모가(19.24유로)에 한참 못 미치는 10.8유로에 형성돼 있다. 신벤은 신랩 지분 40%를 보유 중이었다.
실버레이크는 10월 미 엔터테인먼트 업체 엔데버를 사모 시장으로 되돌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아리엘 이매뉴얼 엔데버 최고경영자(CEO)가 “엔데버의 시장가치와 내재가치 간 괴리가 지속되고 있으며,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해 전략적 대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직후 나온 발표다. 올해 들어 엔데버 주가는 22% 주저앉았다. 실버레이크는 이 회사 의결권의 71%를 장악하고 있다.
경쟁사가 주도하는 공개 매수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시장 전반의 거래를 촉진하고 주가를 띄우기 위해서다. 미 사모펀드 제너럴애틀랜틱은 자신이 뉴욕증시 상장을 주도했던 소프트웨어 기업 인게이지스마트의 지분 52%를 비스타에퀴티파트너스에 넘기기로 했다. 비스타 역시 지난 3월 블랙스톤이 이벤트 기획 관련 소프트웨어 업체 씨벤트(Cvent)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우선주 투자를 통해 12억5000만달러를 넣었다.
공모 시장에서 깎여나간 기업가치를 되살리기 위한 일환이다. 영국 로펌 클리포드챈스의 PE 부문 책임자인 크리스토퍼 설리번은 “사모 시장은 투자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조사 결과를 보고해야 하는 공모 시장보다 유연한 공간(이어서 구조조정 등에 용이하다)”이라고 말했다.
한 유럽계 PEF 임원은 “우리가 본 건 시작에 불과하며, 앞으로 분명히 더 많은 사례가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사모펀드들은 영국 부츠 브랜드 닥터마틴스, 벨기에의 특수 화학제품 유통기업 아젤리스, 사이버 보안업체 익스클루시브네트웍스 등 주가 흐름이 지지부진한 기업 여러 곳의 지분을 여전히 들고 있다.
다만 재상장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런 방식이 항상 선호되는 건 아니다. 한 PEF 업계 임원은 “공모 시장에 다시 상장하기 위해선 기업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며, PEF는 이에 따른 압박을 고스란히 받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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