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파리기후협정이 채택될 때만 해도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인식됐다. 이란 터키 리비아 등 7개국을 제외한 대부분 나라가 협정에 참여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미국에선 내비게이터CO2라는 벤처기업 주도로 중·서부 5개 주를 가로지르는 대규모 파이프라인 건설이 추진됐다. 탄소를 땅속에 가두는 탄소포집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일방적 토지 수용과 안전성을 우려한 지역사회의 반대로 내비게이터CO2는 지난달 프로젝트 중단을 선언했다. 네덜란드에선 지난해 지구온난화 유발 물질로 꼽히는 질소산화물을 줄이기 위해 가축사육 농가 3000곳을 폐쇄하는 방안을 추진하다가 농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탄소중립 문제는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선 이미 민감한 정치 이슈로 부상했다. 시민들은 지지 정당을 선택할 때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찬반을 잣대로 삼기도 한다. 독일에선 사회민주당이 주도하는 연립정부의 과도한 기후 대응 정책에 반대하는 독일을위한대안당(AfD)의 지지율이 2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존의 탄소중립 정책에서 후퇴하는 나라도 생겨나고 있다. 최근 휘발유 자동차 판매 금지 시기를 2030년에서 2035년으로 연장한 영국과 내년도 기후대책 관련 예산을 삭감하고 유류세 감면 제도를 도입한 스웨덴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실행 과정에서 탄소중립에 대한 반발 여론이 거세질 수 있다. 탄소중립이 민감한 정치 이슈로 부상할 날도 머지않았다. 유럽과 미국의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보다 현실적인 목표 설정과 효과적인 실천 방안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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